항목 ID | GC0550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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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琴湖書院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삼성산길 106-5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난아 |
이전 시기/일시 | 1814년 - 금호서원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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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871년 - 금호서원 훼철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47년 - 금호서원 중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5년 6월 19일 - 금호서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8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금호서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금호서원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흥선리 44 외 3필 |
성격 | 유교 건축|서원 |
양식 | 강당 익공 양식 |
정면 칸수 | 3칸[강당]|3칸[사당] |
측면 칸수 | 2칸[강당]|1.5칸[사당] |
소유자 | 재령 이씨 지암 종중 |
관리자 | 재령 이씨 지암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흥선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금호서원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우고 경상 우수사 겸 삼도 수군통제사에 이른 동계(東溪) 이운룡(李雲龍)[1562∼1610] 장군과 향산(鄕山) 이백신(李白新)의 영정(影幀)을 봉안하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위치]
금호서원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사무소 앞을 지나는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에서 팔조령 방향으로 가다 좌측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로 들어가면 금촌교를 지나서 우측에 있는 풍양지(豊陽池)를 바라보고 서 있다.
[변천]
금호서원은 지방 유림이 이운룡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1814년(순조 14)에 창건하였다. 원래 금호서원은 이운룡의 출생지인 현재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 명대 마을에 상충사(尙忠祠)를 세운 것에서 시작되었다. 1814년 현재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에 이건하면서 서원으로 새로 출발하였다. 하지만 금호서원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고 강당만 지금의 자리인 대월산 기슭으로 이건하였다. 그 후 1947년 이운룡의 후손과 유림의 발의로 현재의 서원을 중건하여 봄과 가을에 제사를 모시고 있다.
[형태]
금호서원의 경내에는 시덕문(施德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외삼문(外三門) 안에 강당인 충의당(忠義堂)과 동재(東齋)·서재(西齋)가 있다. 강당 뒤에는 내삼문(內三門)인 상덕문(尙德門)과 사당인 현충사(賢忠祠)가 있다. 서원의 배치는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을 일렬로 나란히 두고, 강당의 전면 좌우에는 동재와 서재를 배치한 전학 후묘형(前學後廟形)이다.
강당의 구조는 삼량가의 초익공(初翼工)집인데, 정면 툇간의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이다. 강당은 2통간 우물마루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온돌방 한 칸씩을 둔 구조 형태인 중당 협실형이다. 양측 온돌방의 전면에는 툇간을 두었으며, 마루와 방 사이는 사분합들문을 설치하였다.
동재와 서재는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一’자형 건물로, 동재는 방 두 칸과 창고 한 칸, 서재는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으로 되어 있다. 외삼문은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一’자형 건물로 대문간 좌우에 고방을 한 칸씩 두었다. 사당은 강당과 더불어 삼량가로서, 초익공집이나 기둥 위를 연꽃과 봉황 머리 모양 장식으로 꾸몄다. 사당은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 반 규모로 앞쪽 반 칸을 툇간으로 구성하였다.
[현황]
금호서원은 현재 재령 이씨 지암 종중 소유로, 1995년 6월 19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