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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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道大寂寺極樂殿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2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오정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35년 - 청도 대적사 극락전 중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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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1월 8일 - 청도 대적사 극락전 보물 제836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도 대적사 극락전 보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청도 대적사 극락전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256 |
원소재지 | 청도 대적사 극락전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256 |
성격 | 사원|사찰 |
양식 | 다포계|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대적사 |
관리자 | 대적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대적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개설]
대적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76년(신라 헌강왕 2) 보조 선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초기 보양이 중창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뒤, 1635년 3칸의 암자를 짓고 대적사라 칭하면서 중건하고 1689년(숙종 15) 성해(性海)가 중수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건물로는 극락전과 삼성각·향각·천왕문·요사채 등이 있다.
[위치]
화양읍 송금리 256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청도 와인 터널 좌측 길로 약 500m 정도 올라가 좌측에 있다.
[변천]
대적사는 876년에 보조 선사[804∼880]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초 보양 국사가 중창하고, 1689년에 성해 대사(性海大師)가 중수하였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사원을 다시 중수하는 등 전란 때마다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후 18세기경 극락전(極樂殿)은 다시 중건되었으며,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형태]
대적사는 정면 3칸[가로 6.8m], 측면 2칸[세로 4.6m]의 다포계 공포를 가춘 맞배지붕이다. 천장은 5량 가구다.
기단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층 기단은 장방형 면석에 연화와 거북이의 형태를 돋을 새김하였고, 정면 중앙 계단의 난간에는 용이 새겨져 있다. 공포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다포 수법으로 쇠서의 외단 형태는 전면 앙서형, 후면 직절형으로 전면과 후면에 차별성을 두었다. 주간에는 공간포 1구식 배치하고, 무고주 5량가로 상부 가구를 구성했다.
내부 중앙 본존불 위에는 아주 형식화되고 간략한 형태의 닫집을 설치하였고, 천장은 연화문과 가상적 오판화(五瓣花)인 보상화문의 단청(丹靑)을 하고 화려한 공포의 배치와 용머리 장식 및 구름 문양의 조각 등 전각 가구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현황]
2012년 현재 특별히 보수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벽화들이 낡아 어떤 그림인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대웅전 앞에는 오래전에 세워졌던 안내판과 최근에 새로 만들어진 안내판이 함께 세워져 있다.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3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벽화는 전각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많이 훼손되었으나 당초 벽화가 공포 사이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18세기 후반의 벽화를 연구하는 학인들에게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