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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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烏禮山城 |
이칭/별칭 | 오혜산성(烏惠山城),오례산성(鰲禮山城),구도산성(仇刀山城),오도산성(烏刀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구촌리 산272 일대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박승규 |
현 소재지 | 오례산성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구촌리 산27 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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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오례산성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지전리 산212 일대 |
현 소재지 | 오례산성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 산207 일대 |
성격 | 성곽 |
양식 | 포곡식 산성 |
관련 인물 | 박명현(朴名賢) |
크기(높이,길이,둘레) | 1.0∼2.8m[높이]|50∼90cm[폭]|4,650m[전체 길이] |
면적 | 775,856㎡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구촌리·지전리와 청도읍 거연리에 있는 산성.
[개설]
오례산성(烏禮山城)은 일명 오혜산성(烏惠山城), 오례산성(鰲禮山城), 구도산성(仇刀山城)이라 불렀으며, 삼국 시대[신라]에 축성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에 의하면 신라는 3산 5악 등 명산대천에 대사, 중사, 소사를 지냈는데, 대사를 지낸 3산 중에서 혈례산(穴禮山)이 지금의 오례산성이 있는 오례산으로 비정되고 있다. 일부 문헌에 의하면 오도산성(烏刀山城)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이 산성은 포곡식 산성으로 산성 내에서는 서문지와 추정 남문지, 봉수대, 망루, 샘 등이 남아 있다.
[건립 경위]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는 “둘레 9,980척, 높이 7척에 성안에는 3개의 개울, 5개의 못, 3개의 샘이 있다.”라고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수축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며, 임진왜란 직전에 충청도 방어사 박명현(朴名賢)이 조정의 명을 받아 대규모 수축을 꾀하였으나, 정세가 위급하여 끝마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위치]
청도읍에서 남동쪽으로 6㎞ 가량 떨어진 매전면 구촌리·지전리와 청도읍 거연리 뒷산의 해발 500∼626m의 능선상에 있는 석성이다. 국도 제25호선에서 청도천을 건너 거연리 단산 마을과 계곡 마을을 거쳐 동쪽으로 올라가면 서문지에 도달할 수 있고, 남쪽으로는 지방도 제987호선의 사촌리에서 승학골을 따라 올라가면 남문지에 이르게 된다.
[형태]
성의 크기는 대략 남북 1.0㎞, 동서 1.5㎞로 전체 둘레는 4.6㎞에 이른다. 사방의 가파른 능선 또는 암벽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성벽으로 오르기는 매우 어렵지만 내부는 매우 평탄한 지형을 이루는 천혜의 요새라 할 수 있다. 성벽은 지형지세에 따라 내탁 기법에 의한 편축법이 사용되었으며, 일부 협축법도 사용되었다. 체성의 축조는 주변의 할석을 이용해 내경되게 쌓았는데, 성 밖이 대략 1.0∼2.8m 정도로 쌓아 올리고 능선 사면 상에는 성벽 윗면을 계단식으로 축조한 것이 확인된다. 성벽 위에는 성첩을 두었는데 상단 폭은 대략 50∼90㎝ 정도이며 체성 외벽면을 그대로 연장하여 축조하였다.
성문은 사방 성벽 중 접근이 용이한 낮은 능선 사면에 서문지가 확인되며, 능선 봉우리에 망대 또는 망루와 같은 시설을 두었던 흔적도 남아 있다. 서문지에서는 문지석과 기와 조각들이 확인되었으며, 남문지는 계곡으로 성의 외부와 연결되어 수구의 기능을 겸한 문지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북벽과 서벽 일부에는 석축 성벽으로부터 안쪽으로 10m 거리를 두고 토루가 남아 있다. 이 토루의 성격과 용도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초기에 만들어진 토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오례산성 내에 3개의 개울, 5개의 못, 3개의 샘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2곳의 우물과 2곳의 개울만 찾을 수 있다. 또 서문지에는 약 3m 거리를 두고 문지 도리석 2매가 남아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하나만 확인된다.
전체적으로 석축이 이루어졌으며, 성벽은 서문지 왼편으로 200m쯤 가면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다. 동·서·북벽은 일부 구간이 남아 있기는 하나 대체로 무너져 내렸다. 문지 근처나 능선 봉우리에 망대 또는 망루와 같은 초소 시설도 확인할 수 있으며, 기와와 토기 조각을 볼 수 있다. 이 외에 봉수대 시설도 있으나, 정확한 성격은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오례산성은 포곡식 산성으로 산성 내에서는 서문지와 추정 남문지, 봉수대, 망루, 샘 등이 남아 있다. 삼국 시대[신라]에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오례산성은 고대 이서국의 3성[현]의 하나로서 이서국의 중심 거점으로 평가된다. 오례산성이 위치하는 오례산은 신라의 대사가 치러진 3산의 하나인 혈례산으로 비정되는 점도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잔존 상태가 양호한 부분도 있으나 후대의 훼손으로 외형이 점차 망실되고 있어 보존 대책 수립과 학술 발굴 조사에 의한 추가적인 연구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