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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사천왕 석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812
한자 淸道雲門寺四天王石柱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264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진관스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591년 - 청도 운문사 사천왕 석주 조성 추측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 청도 운문사 사천왕 석주 보물 제318호로 지정
현 소재지 청도 운문사 사천왕 석주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지도보기
성격 석조 사천왕상
크기(높이,길이,둘레) 제1 석주(증장천왕상) : 1.52㎝[높이]|43㎝[너비]|1.14㎝[입상 높이]|제2 석주(다문천왕상) : 1.64㎝[높이]|46㎝[너비]|1.18㎝[입상 높이]|제3 석주(광목천왕상) : 1.63㎝[높이]|54㎝[너비]|1.28㎝[입상 높이]|제4 석주(지국천왕상) : 1.53㎝[높이]|52㎝[너비]|1.22㎝[입상 높이]
소유자 운문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 작압전에 있는 석주.

[개설]

청도 운문사 사천왕 석주는 운문사 작압전 안에 석조 여래 좌상과 함께 봉안되어 있다. 작압전 중앙의 석조 여래 좌상 좌우에 각기 2구의 사천왕상을 배치하고 있으며, 오른쪽에 다문천왕과 지국천왕이 자리하고, 왼쪽으로 광목천왕과 증장천왕이 자리하고 있다.

[위치]

운문사 작압전 내에 봉안되어 있다. 사천왕 석주는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과거 이곳에 세워진 전탑의 탑신면이나 혹은 안 벽면에 봉안되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천왕 석주는 작압전 내 석조 여래 좌상 좌우에 둘씩 모두 4기의 석주가 배열되어 있다. 각각의 면에는 사천왕상 1구씩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사천왕상들은 모두 악귀 생령 좌상의 입상으로 무인의 복장인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었지만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다.

[형태]

사천왕은 불보살을 외호하고 불교를 믿는 사람을 보호하는 신이다. 특히 부처가 상주하는 정토의 사방을 지키는데, 동쪽 지국천왕(東方 持國天王), 남방 증장천왕(南方 增長天王), 서방 광목천왕(西方 廣目天王), 북방 다문천왕(北方 多聞天王)이 있다. 사천왕상들은 그 배치나 각 천왕상이 들고 있는 지물에 따라 구분하다.

운문사 작압전 내 사천왕 석주는 총 4기이며, 제1 석주는 높이 1.52㎝, 너비 43㎝, 입상 높이 1.14㎝이다. 제2 석주는 높이 1.64㎝, 입상 높이 1.18㎝, 너비 46㎝이다. 제3 석주는 높이 1.63㎝, 너비 54㎝, 입상 높이 1.28㎝이며, 제4 석주는 높이 1.53㎝, 너비 52㎝, 입상 높이 1.22㎝이다.

제1 석주는 삼고저를 든 증장천왕상으로 목에는 영락이 걸려 있고, 오른팔에는 천의가 늘어져 있으며, 발밑의 악귀는 머리와 엉덩이가 눌려 신음하고 있다. 입상의 직립 자세가 아니고 왼쪽으로 향하였으며, 얼굴과 양쪽 다리, 그리고 양쪽 발의 높임 역시 좌향을 하고 있다.

제2 석주는 탑을 든 다문천왕상으로 몸을 약간 비튼 자세지만 거의 정면을 향한 입상으로 오른손은 내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왼손은 어깨까지 들어 탑을 받들고 악귀는 양쪽 어깨가 눌려 입이 찢어질 듯 신음하고 있다. 악귀의 두 어깨를 밟고 서 있는 다문천왕상은 양감이 없는 평판적인 신체에 세장하고 섬약한 체구, 온화한 얼굴 등이 다른 사천왕상들과 유사한 형태를 띤다.

제3 석주는 불꽃을 든 광목천왕상으로 무릎을 굽혀 악귀의 두 어깨를 밝고 선 자세로 왼손은 들어 불꽃을 잡았으며, 오른손은 내렸다. 제2 석주의 입상과 유사한 것으로 왼손은 어깨까지 들어 꽃가지를 잡고 있으며, 오른손은 약간 구부려 오른쪽 다리에 놓고 있다.

제4 석주는 칼을 든 지국천왕상으로 악귀와 어깨와 엉덩이를 밟고 왼손은 내려 칼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은 들어 칼 중심을 받치고 있다. 노한 얼굴에 눈이 크고 양손에 장검을 받들고 있으며, 왼손은 배꼽 앞에서 검파를 쥐었으며, 오른손은 가슴 높이까지 들어 손바닥을 바깥으로 한 채 장검 중심부를 잡고 있다. 그리고 양팔에 걸친 천의는 좌우로 펼쳐지며 유려하게 흘렀으며, 보관 양쪽으로부터 날리는 관대도 둥근 두광 안에 조식되었다.

[의의와 평가]

사천왕 석주는 신체는 장대하지만 양감이 줄어든 섬약한 체구, 비교적 부드러운 얼굴 등 양감은 뚜렷하고 세련된 수법을 보여준다. 591년(신라 진평왕 13)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연혁은 알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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