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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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岬寺 |
이칭/별칭 | 오작갑사(五鵲岬寺)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김미경 |
현 소재지 | 오갑사(五岬寺)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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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사찰|사지(寺址) |
창건자 | 신승(神僧) |
[정의]
신라 시대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었던 다섯 개의 사찰
[개설]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대에 청도 운문사를 창건한 신승(神僧)이 지금의 운문사를 중심으로 하여 동서남북 사방에 갑사를 지어 오갑사(五岬寺)를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중앙의 대작갑사(大鵲岬寺)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가슬갑사(嘉瑟岬寺), 남쪽에 천문갑사(天門岬寺), 서쪽으로는 소작갑사(小鵲岬寺)와 북쪽에 소보갑사(所寶岬寺)를 지었다. 이 중 대작갑사는 지금의 운문사(雲門寺)이고 소작갑사는 현재 대비사(大悲寺)이다. 그러나 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혼란 정국에 오작갑사는 대부분 폐사에 이르렀고, 운문사와 대비사만 법등을 이어오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 기록 및 의미]
여러 문헌 기록에 의하면 오갑사(五岬寺)의 창건 시기는 대개 다섯 개의 사찰이 거의 동시에 창건되었다. 조선 시대인 1718년에 편찬된 『경상도 청도군 동호거산 운문사 사적(慶尙道淸道郡東虎踞山雲門寺事蹟)』에는 560년(진흥왕 21)부터 7년 동안 이루어져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오갑사 는 공통된 표기인 ‘갑사(岬寺)’라는 명칭을 통해 계곡 사이에 위치한 사찰 또는 풍수상의 요지에 위치한 사찰로서 오갑사가 있는 입지 조건은 매우 유사하다. 특히 오갑사는 사찰로서의 역할 이외에도 신라의 서쪽 변방 요충지인 비보지(裨補地)나 또는 교통상 요충지로서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변천]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삼한이 어지러울 때 대작갑사, 소작갑사, 소보갑사, 천문갑사, 가서갑사 등 다섯 갑사가 모두 파괴되어 다섯 갑사의 기둥을 대작갑사에 모아 두었다고 하는데, 현재 오갑사 중 유일한 현존 사찰은 운문사와 대비사뿐이다.
운문사는 국내 최대 규모와 학인 수를 자랑하는 비구니 승가 대학으로서 선원과 율원까지 갖춘 총림 체제를 구축하며, 가람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경내에는 17세기에 중창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작갑사의 옛 명칭을 간직한 듯한 작압전, 관음전, 명부전, 오백 나한전, 금법당, 칠성각 등의 불전 및 만세루와 범종루 외에 드넓은 평지에 꽉 들어찬 요사 등의 가람 불사를 통해 옛 명성을 되살리고 있다. 대비사 역시 17세기에 중창된 법당인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 등을 갖추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련 문화재]
오갑사 와 관련된 문화재로는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보물 제835호], 청도 운문사 석조 여래 좌상[보물 제317호], 청도 운문사 석조 사천왕상[보물 제318호], 「청도 운문사 비로자나 삼신 불회도」[보물 제1042호], 청도 운문사 동호[보물 제208호], 청도 운문사 동·서 삼층 석탑[보물 제678호], 청도 운문사 금당 앞 석등[보물 제193호], 청도 운문사 원응 국사비[보물 제316호] 등과 청도 대비사 대웅전[보물 제834호]이 있다.
[현황]
현재 오갑사 중 현존 사찰로는 대작갑사인 운문사와 소작갑사로 추정되는 대비사뿐이며, 이 외의 갑사 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문헌 기록에는 지금의 운문사를 중심으로 동쪽 9,000보 지점에 가슬갑사, 남쪽 7리 되는 지점에 천문갑사, 서쪽 10리 지점에 대비갑사, 북쪽 8리 되는 지점에 소보갑사 등이 전한다고 하나 현재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고 대체로 지표 조사를 통해 비정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