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6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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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水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동창길 10-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건립 시기/일시 | 1670년 - 운수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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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3년 - 운수정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5년 - 운수정 중수 |
현 소재지 | 운수정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 167 |
성격 | 누정 |
양식 | 목조 가구식|소로수장 팔작 기와집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밀성 박씨 |
관리자 | 밀성 박씨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에 있는 밀성 박씨 정자.
[개설]
운수정은 매전면 동산리 동창천변의 창벽 위에 있는 정자이다.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와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이 정사를 마련하여 운수정이라 하고 유생들에게 학문을 전수한 곳이다. 김대유, 박하담 사후에는 이곳에 위패를 봉안하고 향현사(享賢祠)라 하였다가, 선암 서원이 창건된 뒤 위패를 이향했다.
[위치]
매전면사무소가 있는 동산 1리 동곡 마을에서 농업 협동조합 맞은편 골목으로 약 50m가량 들어간 동창천변 언덕 위에 있다.
[변천]
운수정은 삼족당 김대유, 소요당 박하담이 1670년(영조 6)에 건립하였고, 1923년에 중건[「운수정 중건기(雲水亭重建記)」, 「야성 송준필 근기(冶城宋浚弼謹記)」]했고, 사후에 이들의 위패를 봉안했던 향현사가 되었다. 그 뒤 1568년 선암 서원이 창건된 뒤 위패를 이향한 뒤 밀성 박씨가 선조의 유덕을 추모하고 문중의 회합 장소로 이용하는 정자로 남았다. 1923년과 1975년[「운수정 중수기(雲水亭重修記)」, 「진성 이가 원근기(眞城李家源謹記)」]에 중수하였다.
[형태]
운수정은 동창천변의 암밤 위에 동창천과 그 건너 산을 바라보며 동향으로 위치하고, 주변으로는 토석 담장을 쌓아 전면에는 사주문, 후면에는 일각문을 각기 내어 출입한다.
정자는 정면 3칸[2.4m[8자]], 측면 2칸[2m[6.6자]]의 아담한 소로수장집이다. 평면상 주목되는 것은 본칸 측면 주칸은 칸반이나 마루가 있는 양측면은 2칸으로 주칸을 달리했다. 평면은 가운데 온돌방 1칸에 양측으로 마루를 대칭으로 들인 중실협당형이다. 전면에는 퇴와 툇마루를 두어 마루와 연결하였고, 마루와 툇마루 사방으로는 험함을 돌려 누마루처럼 꾸몄다.
구조는 얕은 시멘트 기단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온돌방에 벽을 치고 창호를 달았다. 마루 가운데 배열된 온돌방 창호는 먼저 청방간에는 사분합들문을 달아 필요시 넓은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고, 방안에서도 동창천과 그 주변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앞문은 쌍여닫이 세살문, 뒷문은 외여닫이 세살문을 다는 등 위치에 따라 다양한 창호를 구성한 점이 이채롭다. 마루 상부 가구는 건실한 5량가이다. 양 측면 가운데 기둥에서 대량 위로 충량을 걸었다. 충량 등 위에는 추녀와 측면 서까래를 건 외기중도리를 받고 있다.
정자 뒤편으로는 본채와 아래채가 ‘ㄱ’자형으로 배치된 관리사가 있다. 본채는 시멘트로 덧마감된 자연석 기단 위에 네모기둥을 세워 심벽과 3량가의 지붕 가구를 받쳤다. 평면은 좌측으로부터 정지·큰방·마루·건너방을 약 2.5m[8.3자] 간살로 배열된 전형적인 남부 지방의 4칸 ‘一’자형 살림집형이고, 아래채는 온돌방 2칸·마구·도장으로 배열된 4칸 규모이다.
지붕은 경량 기와형 칼라 강판이다. 지붕 가구도 비교적 고식으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근년에 창호, 벽체, 지붕을 보수했다.
[현황]
문중의 지속적인 보수 관리와 이용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문중의 회합과 각종 행사에 이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923년경에 중건하고 1975년 중수하긴 했으나 4칸 ‘一’자형 살림집의 관리사와 함께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청도 누정 자료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