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7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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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地-産室-河東 |
영어의미역 | Hadong, the Cradle of the Land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현식 |
[개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는 지리산 남면의 악양골 기슭에 위치한 평범한 산골 마을이었으나 소설가 박경리(朴景利)[1926~2008]가 『토지』의 주요 무대로 설정하면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평사리와는 전혀 인연이 없던 박경리는 하동군 악양면 미점리 아미산 아래에서 동정호까지의 넓은 들판, 만석지기 부자를 서넛은 낼 만한 악양 ‘무딤이들’을 보고 『토지』의 주무대로 낙점했다고 한다. 현재 평사리에는 TV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 즉 최참판댁과 주요 인물들의 가옥이 건립되어 있다. 또한 대하소설 『토지』와 드라마 등을 소개하는 평사리 문학관이 세워졌으며, 매해 대중독자를 대상으로 한 ‘토지 문학제’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평사리는 실재의 공간이면서 허구의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전자가 지리산과 섬진강, 화개장터, 무딤이들을 넘나들며 가난한 삶을 영위했던 생활의 공간이라면, 후자는 동학 농민 운동에서 해방기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침략에 따른 민족의 수난과 그에 맞선 민중의 저항이 펼쳐진 저항의 공간이다. 그리고 현재의 평사리는 실재와 허구가 맞물려 생활과 역사가 어우러지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무딤이들과 화개장터, 그리고 지리산과 섬진강]
하동군 악양면에 속해 있는 평사리는 섬진강을 경계로 전라도와 접면하고 있어 영남과 호남 두 지방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웃 마을인 화개면 탑리에 개설된 ‘화개장터’는 영남과 호남, 그리고 각지의 민중이 교류한 대표적인 공간이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화개장터는 우리나라의 5대 시장에 들 정도로 방대한 양의 생산물이 모여들었고, 민중들은 집산물을 서로 사고팔면서 삶과 문화를 교류해 갔다. 그러나 자리 잡은 곳이 워낙 요지인지라 역사의 소용돌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니, 특히 지리산의 남쪽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여순 반란 사건과 6·25 전쟁 기간 많은 피해를 입기도 했다. 따라서 박경리의 『토지』에 그려진 동학 농민 운동을 비롯한 일제 강점기의 각종 저항 운동은 두 사건의 전사에 해당한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평사리가 『토지』의 배경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채 섬진강을 바라보는 드넓은 악양벌, 즉 ‘무딤이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농사꾼 이외의 등장인물, 이를테면 스님과 포수, 백정 등 전근대의 삶과 현실을 다층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인물들이 살아갈 여건을 갖춘 하동의 지리적 여건 또한 한몫을 했음이 분명하다.
하동군의 북부에는 지리산의 연봉을 비롯한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이 산지들은 남쪽 해안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져 북고남저의 지형을 이룬다. 또한 섬진강이 서쪽 전라남도와의 경계를 흘러 광양만으로 유입되며, 덕천강이 동쪽 경계를 남동류(南東流)하여 진주 남강의 진양호로 흘러든다. 하동의 기후는 남해안에 인접한 관계로 여름은 비교적 서늘하고 겨울은 따뜻한 해양성 기후의 특성을 띤다. 하동군을 중심으로 한 섬진강 유역은 장마전선이 제일 먼저 상륙하는 곳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강수량을 자랑하는 다우(多雨) 지역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팽나무·비자나무·동백나무를 비롯한 난대성 활엽수림이 잘 자라며, 하동의 특산물인 녹차가 다량 재배, 생산되는 것도 이런 기후적 조건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하동군은 교통이 발달하여 주변 지역과 교류가 활성화된 곳에 해당한다. 현재 남해고속도로와 경전선이 하동군의 남부를 가로지르고, 부산~목포, 구례~남해를 잇는 국도가 나 있으며, 경상남도 서부의 중심지인 진주와도 매우 인접해 있다. 평사리를 제외한다면 『토지』에서 중심을 이루는 공간은 평사리에서 쫓겨난 서희가 재기를 불태우던 만주와 거기서 귀환해 살던 진주이다. 진주는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경상도의 중심을 이루던 경제·문화·군사·교육의 요충지였다. 현재는 근접한 부산의 성장으로 중소 도시의 규모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여전히 경상남도 서부의 중심지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 호조건 때문인지 평사리를 비롯한 하동군 일대에는 주요 유물과 유적, 관광지가 여럿 들어서 있다. 평사리의 신라 시대 석축 산성인 하동 고소성(河東姑蘇城), 하동 송림, 하동향교, 옥산서원 등과 같은 비교적 규모가 소소한 곳도 있지만, 쌍계사와 지리산의 불일폭포, 섬진강 소나무 숲, 조선 시대의 생활양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청학동, 영남과 호남의 화합 장소로 상징되는 화개장터 등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여기에 정점을 찍는 것이 하동군과 하동문화원이 『토지』의 문학적 성과를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2001년부터 매해 10월 개최하고 있는 ‘토지 문학제’일 것이다. 참고로 인근의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는 2008년 이병주 문학관이 건립되어 매년 ‘이병주 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토지』의 평사리가 하동의 풍성한 여건에 힘입어 현실감을 획득하고 있다면, 현실의 평사리는 『토지』의 평사리를 통해 역사성과 전통성을 새롭게 부여받고 있는 셈이다.
[서희와 길상, 봉순, 그리고 최참판댁과 평사리 사람들]
1. 원형적 삶의 공간으로서의 평사리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현실의 평사리와 무관하며 최참판댁의 가솔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도 허구의 인물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평사리에 드라마 세트장이 지어짐으로써 관광객들은 마치 『토지』 속 평사리가 실재하는 공간인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된다. 그런 이유 중 하나도 드라마 세트장이 소설 속 평사리의 공간적 의미를 비교적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지적했듯이, 평사리의 모든 길은 최참판댁으로 이어진다. 최참판댁은 경제적·정신적으로 평사리 공동체의 정점에 서 있다. 평사리 사람들 역시 가연(佳緣)이든 악연이든 대지주인 최참판댁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영위하는 한편 더 나은 미래를 꿈꾸어 간다. 따라서 평사리는 이들의 고향인 동시에 공동체적 삶의 터전이며, 충만한 미래의 거울인 원형적 공간이라 할 만하다.
『토지』에서 평사리는 서희가 조준구에게 땅을 빼앗긴 채 만주로 이주하기 전, 그리고 만주에서 부를 축적하여 귀환한 후 빼앗긴 땅을 되찾은 전후에 핵심적 공간으로 등장한다. 제1부에서는 ‘서장’의 추석 풍경이 암시하듯 풍요롭고 완결된 서사시적 세계로, 제2부에서는 인간 세계라면 응당 그러하기 마련인 고통과 불행, 한과 연민, 그에 맞서 되찾아야 할 원망(願望)의 땅으로 그려진다. 요컨대 평사리는 풍요와 불모의 동시적 공간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최후에 평사리는 자연과 생명이 온전히 발현되고, 계급과 사상, 생활의 면모가 다른 다양한 군상들이 화합하고 교류하는 원초적 공간으로 거듭난다. 평사리의 가치화는 박경리의 소설적 형상화의 성공을 위한 치밀한 계산의 산물이겠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평사리가 온 생명의 터전으로 빛나기를 바라는 작가의 욕망이 삼투되어 있다.
평사리는 농경 공간으로 ‘산·마을·들·강’의 전형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전통 사회에서 산과 강은 자연적 공간을 대표하는 지표이며, 마을과 들은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인위적 공간이다. 최참판댁을 비롯한 평사리 사람들은 이런 이중적 공간 속에서 화합과 갈등, 욕망과 해원 등 가장 근본적인 삶의 길을 따라 각각의 운명과 그것의 극복을 제조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경리는 평사리를 자족적이면서도 외부와의 소통이 가능한 개방적 공간으로 구성하는 지혜를 잊지 않았다. 이를테면 마을 뒷당산이 지리산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된다거나, 섬진강에 화개와 하동을 오가는 장배가 있다거나 하는 식의 자연스럽고 또 은밀한 통로의 설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통로는 단순히 삶의 편리를 위한 이동 공간이 아니라 개인적·민족적 차원의 도피와 저항, 현실의 탈출과 미래의 도모를 도와주는 일종의 탈출구이다.
2. 노동의 건강함과 생명력이 넘치는 평사리
평사리의 중심은 당연히도 최참판댁이다. 『토지』의 서사는 윤씨 부인과 별당아씨, 그리고 서희, 그 주변 인물로서 월선과 봉순, 양현 등의 사랑과 이별, 도피와 추방, 복수와 복귀에 맞춰져 있다. 최치수, 구천[김환], 길상, 용이, 이상현 등의 남성 인물은 여성의 서사를 보충하고 활성화하는 역할로 제한되고 있는 면마저 있다.
이런 여성 중심의 서사, 그것도 성의 침탈과 불륜, 계급적 성차를 무시한 결혼 등의 비정상성을 드러내기 위해 박경리는 최참판댁의 가옥 구조를 안채와 별당이 강조되는 여성 중심적이며 폐쇄적이고 남녀의 교류를 허락하지 않은 곳으로 설정했다. 이것은 조상을 모시는 제의 공간인 ‘사당’이 신성하고 권위 있는 공간이 아니라 혈연적 정통성이 없는 김환, 김길상, 조준구 등의 도피와 비밀 회합의 장소로 그려지고 있는 것과도 여러 모로 상통한다. 대표적인 남성적 공간이 가부장적 권위와 윤리를 박탈당하는 결여의 공간으로 제시된 것이다.
윤씨 부인과 김개주, 별당 아씨와 김환, 서희와 길상, 봉순이와 이상현의 관계가 비정상적인 것으로 제시되며, 주어진 운명의 업보를 극복하기 위한 그들의 삶이 고통의 연속으로 형상화되는 것도 결여의 공간으로서 최참판댁의 구조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최참판댁의 3대에 걸친 불행을 마감하고 다시 평사리의 안주인으로 복귀하는 최서희의 성공은 무엇 때문에 가능했을까? 만주로 쫓겨 가는 서희의 불행은 먼 친척뻘인 조준구와 최참판댁의 핏줄과 부를 탐낸 몇몇 평사리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참판댁의 소작농이 대부분인 평사리는 경제적 불균등성이 강제되는 불평등의 공간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박경리는 평사리를 지주·소작 관계에 따른 억압과 가난의 공간으로보다는 농촌의 건강한 삶과 노동의 신성함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그렸다. 게으르며 일하지 않은 인물들이 비난받는 데 반해, 월선과 용이의 사랑을 방해하고 끝내는 용이를 애욕의 대상으로 점유하는 임이네가 생명력 넘치는 악인(?)으로 개성화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요컨대 평사리의 노동 공간은 노동의 신성함과 건강함, 그리고 사랑과 별리, 애욕과 삶의 활력이 꿈틀대는 생활의 공간이다. 물론 최서희는 만주에서 귀국 후 평사리로 귀향하는 대신 진주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아마도 이것은 평사리를 혈연이나 지연 같은 폐쇄적 관계가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적·도덕적 공동체의 공간으로 남기고자 했던 박경리의 생명 사상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농촌 공동체에서 대지주의 몰락 혹은 도시로의 이주는 식민 지배와 6·25 전쟁, 산업화 시대를 거치는 동안 한국 사회가 경험했던 가장 극심한 변화의 하나였다. 부재지주(不在地主)로 변모한 서희의 평사리 귀향의 보류와 지연은 이런 역사 현실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3. 대립과 분열, 저항과 생명의 지리산
『토지』에서 평사리와 대조되는 공간이 있다면, 그것은 섬진강이 아니라 지리산을 비롯한 주변의 산악 지대이다. 사실 섬진강은 용이와 월선이의 비극적 사랑 등에서 보듯이 단절된 인연을 잇고 또 끊는 단속(斷續)의 공간으로 유장히 흐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리산 권역은 인간의 욕망과 권력, 신분과 빈부의 차이가 격렬하게 부딪히는 곳이다.
먼저 최참판댁의 비극은 윤씨 부인이 절에 치성을 드리러 갔다가 동학당 김개주에게 겁간당해 구천[김환]을 낳으면서 시작된다. 윤씨 부인이 집에 들여 머슴으로 지내던 구천은 이복형인 최치수의 부인 별당아씨와 눈이 맞아 지리산 연곡사로 야반도주하며, 이 일을 계기로 최치수는 구천의 사냥에 나서게 되고 서희는 졸지에 어미를 잃는 비극에 처한다. 그뿐만 아니라 최치수 역시 그의 씨앗을 받아 신분 상승을 이루려던 귀녀와 김평산, 칠성이의 공모와 실패 끝에 살해당한다. 너른 들판과 가택 내에 잠재되어 있던 욕망과 갈등이 폭로되고,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의 추적과 도피, 불행과 일시적 행복이 전면화 되는 곳이 지리산을 비롯한 인근의 산악 지대이다.
물론 『토지』에서 지리산은 궁극적으로 대립과 분열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저항과 생명의 공간으로 제시된다. 이는 사냥꾼 강포수의 변화와 길상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사냥을 하면서 점차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 강포수는 홀로 연모하던 귀녀가 낳은 사생아를 거두어 산 속으로 사라진다. 이것은 죄악의 씨앗으로 태어난 아이뿐만 아니라 귀녀의 구원과 갱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귀녀는 면천과 신분 상승, 애욕의 달성을 최치수에 대한 수단적 사랑을 통해 얻으려 하지만, 그 일에 실패한 뒤 최치수를 살해하는 일에 가담하는 극한의 타락에 빠져든다. 하지만 강포수의 조건 없는 사랑은 귀녀의 범행 자백과 속죄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고, 귀녀 역시 소외 의식을 극복한 채 담담하게 최후를 맞는다. 강포수와 귀녀의 사적인 관계는 이후 민족적 차원의 해방 운동으로 결실을 맺는다. 왜냐하면 강포수가 거둔 귀녀의 아들 강두매가 중국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독립운동에 투신, 투철한 공산주의자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강두매가 지리산에서 만주로의 확장, 소박한 생명주의에서 세계사적 이념으로의 동참을 통해 독립운동을 수행한다면, 김길상은 정반대의 궤적을 그리면서 『토지』의 세계를 완결 짓는다. 길상은 최서희와 함께 만주에서 귀국하는 대신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2년간 투옥된 후 진주로 내려오며, 끝내는 쌍계사의 도솔암에 칩거하며 일생의 꿈인 탱화를 마무리 짓는다. 탱화의 완성은 서희와의 갈등이 끝났음을, 둘 사이의 계급적·사상적 차이를 해소한 사랑이 드디어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도솔암은 앞세대와 뒷세대를 이어 주고 동학사상이 보존, 계승되는 생명의 공간이기도 하다. 서희와 길상의 큰 아들 환국은 모종의 저항 운동을 진행하던 친구를 도솔암으로 도피시키는데, 이를 통해 도솔암은 동학 무리들의 은신처이자 훗날을 도모하는 곳으로 재가치화 된다. 이런 불교와 동학의 안거는 도솔암이 자리한 지리산이 억압과 핍박, 착취와 수탈 등의 고통이나 생사의 번뇌를 안고 모여든 다양한 계급의 민중들이 공동의 선을 모색하고 추구하는 공간으로 우뚝 서 있음을 상징한다 하겠다. 사상적·이념적 지반은 다르지만, 6·25 전쟁을 전후한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 투쟁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