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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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義洪 |
영어음역 | Gim Uihong |
이칭/별칭 | 김병원(金炳源)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아네스 |
출생 시기/일시 | 188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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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8월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4월 |
몰년 시기/일시 | 1908년 |
추모 시기/일시 | 2000년 8월 15일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 |
기념물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취간림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김의홍(金義洪)은 1886년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에서 태어났다. 김병원(金炳源)으로도 불렸다. 1907년은 헤이그 밀사 사건과 그에 따른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7조약[일명 한일신협약]에 의한 한국의 통치권 약화, 한국군 강제 해산 등으로 각지에서 의병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김의홍은 1907년 8월부터 고광순(高光洵), 박매지(朴每之), 권석도(權錫燾) 의병장의 휘하에서 항일 무장 운동을 펼쳤다. 또한 하동 지역에서 활동했던 임봉구(任鳳九) 의병대와 연계하여 군수품을 모집하고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다.
1908년 4월 김의홍은 임봉구(任鳳九) 등과 친일파로 알려진 일진회 회원 장재수(張在洙)를 사살하였다. 이 일로 악양면 입석촌에서 체포되어 하동주재소에 압송된 후 고문을 당하였다. 일본인 순사는 김의홍을 통해 임봉구, 박매지 의병장의 행방을 알고자 하였다. 그는 의병대가 있는 곳의 반대쪽으로 일본인 순사와 수비병을 유도하다가 틈을 보아서 탈출을 시도했으나, 1908년 4월 8일 악양면 신흥촌(新興村) 부근에서 발각되어 신흥촌 계곡에서 일본 수비병에게 총살되었다.
[상훈과 추모]
2000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008년 지리산항일투쟁기념사업회에서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취간림에 지리산 항일투사 기념탑[악양 항일투사 추모탑비]을 세웠는데, 여기에는 김의홍 등 지리산 일대에서 일제와 맞서 싸운 대표적인 항일 독립투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