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323 |
---|---|
한자 | 權錫燾 |
영어음역 | Gwon Seokdo |
이칭/별칭 | 권명구(權命九), 윤일이(尹一二)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아네스 |
[정의]
개항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활동사항]
권석도(權錫燾)는 1907년 구례, 하동 지역에서 활동하던 고광순(高光洵), 박매지(朴每之)의 의병 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의병장으로 추대된 권석도는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는데, 1907년 12월에는 하동에 있는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일본군 40여 명을 사살하였고, 1908년 1월에는 하동군 악양면 봉대에서 일본군을 섬멸하였다. 또한 고을의 부호와 유지들로부터 군자금과 무기를 모집하는 활동을 벌이다가 1908년 6월 하동의 일본군 수비대에 붙잡혔다. 20여 일 뒤 하동주재소에서 탈주하였으나 토벌대의 추격으로 가슴에 총상을 입었다.
1909년 3월에 그는 이학로(李學魯) 의병장과 힘을 모아 진주 등지에서 다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행상으로 변장하여 은밀하게 활동하던 중 진주에서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12월에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종신 징역형을 언도받고, 대구공소원(大邱控訴院)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6년 9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1916년 6월에 가석방되었으나, 1918년 2월 강도사건의 누명을 쓰고 함양경찰서에 또다시 체포되었다. 이후 미결수인 채 10여 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1918년 12월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저술 및 작품]
권석도가 쓴 ‘용약의병불요불굴(勇躍義兵不撓不屈)’이라는 유묵이 독립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용맹한 의병은 흔들리거나 꺾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상훈과 추모]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91년 8월 권석도기념사업회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상림숲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