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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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每之 |
영어음역 | Bak Maeji |
이칭/별칭 | 박인환(朴仁煥),치장(致長),박마야지(朴馬也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 124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아네스 |
출생 시기/일시 | 187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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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12월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6월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9월 17일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5월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7월 |
몰년 시기/일시 | 1909년 |
추모 시기/일시 | 2003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 124 |
기념탑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취간림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박매지(朴每之)는 1878년(고종 15)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 124번지에 태어났다. 1907년(순종 1) 하동 지역에서 의병대를 조직했다가, 300여 명의 부대원과 함께 고광순(高光洵) 의병 부대에 합류하였다. 고광순이 전사한 뒤 의병진을 재편성하여 총대장이 되었는데, 그가 이끌던 의병 부대는 화승총을 사용하였고, 중견 간부는 러시아에서 입수한 권총으로 무장하였다.
1907년 12월 박매지는 하동군 악양면에서 권석도(權錫燾)를 총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고문 겸 부대장으로 의병을 지휘하였다. 같은 해 12월 악양면 신성리와 정서리 사이의 신금벌[일명 신건징이]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이듬해인 1908년(순종 2) 3월에는 화개면에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이즈음 하동 지역 부자인 여건상(余健相)에게서 군량미를 받아 운반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달아났다.
1908년 6월 진주형무소를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다량의 화약을 입수하여 진주에 잠입하였다가 권석도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7월 9일 탈옥하였다. 9월 17일 우수보(禹守甫)와 함께 악양면에서 일본인 밀고자 쓰다 만기찌를 처단하였다. 1909년 5월에는 권석도·이학로(李學魯)와 함께 진주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7월 진주 대평면[일명 한들] 전투에서 체포된 뒤 일본군에게 총살을 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008년 지리산항일투쟁기념사업회에서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취간림에 지리산 항일투사 기념탑[악양 항일투사 추모탑비]을 세우고, 그 주변에 박매지 등 독립투사의 비석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