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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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在雲 |
영어음역 | Jeong Jae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628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영숙 |
출생 시기/일시 | 1895년 5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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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
몰년 시기/일시 | 1950년 4월 24일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628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본관 | 진양 |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재운(鄭在雲)의 본관은 진양(晉陽)으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정기룡(鄭起龍)의 후손이다. 1895년 5월 4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628번지에서 태어났다.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던 금양국민학교의 전신인 현산학교에 들어가 신학문을 배우고 어려서부터 집 안에서 한학을 배웠다.
1919년 3월 29일 진교장날 정재운은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의 정재백(鄭再伯)[본명 정순종(鄭舜鍾)], 금남면 덕천리의 이원태(李源泰), 진교면 월운리의 이홍식(李弘植) 등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진교시장에 운집한 1천여 명의 군중을 주도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진교주재소를 공격하여 검거자들을 탈환하려 했으나 본서(本署)의 지원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정재운은 진교장터 3·1 운동을 지도하고 태극기를 제작·배포하며 「독립선언서」 배포에도 앞장선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같은 해 5월 2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진주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였다. 출옥 후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195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