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165 |
---|---|
한자 | 李弘植 |
영어음역 | Yi Hongsik |
이칭/별칭 | 낙중(洛中),송계(松溪)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현덕 |
출생 시기/일시 | 1896년 3월 28일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
몰년 시기/일시 | 1963년 10월 20일 |
추모 시기/일시 | 2004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 |
비 |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 남포마을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홍식(李弘植)은 1896년(고종 33) 3월 28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월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9일, 이원태(李源泰)·정재백(鄭在伯)·정재운(鄭在雲) 등과 하동군 진교면 장날 군중 1천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눠 주고는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며 진교의 경찰관주재소까지 진출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에 분노한 시위 군중이 주재소를 포위하고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일본 경찰이 응하지 않자 군중들은 주재소로 밀고 들어갔으나, 하동경찰서에서 지원 나온 일본 경찰들이 총검을 휘두르자 부득이 해산하고 말았다. 다음날 군중들은 다시 경찰주재소로 몰려가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1919년 5월 31일 이홍식은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3년 8월 조선공산주의자통일연맹을 조직했다는 혐의로 다시 체포되었으나 1934년 4월 불기소 석방되었다. 이홍식은 소설가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의 중부이다. 1963년 10월 20일 작고하였다.
[묘소]
2005년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2004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으며,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 남포마을 입구에 이홍식의 업적을 기리는 애국지사 합천 이공 휘 홍식 사적비(愛國志士陜川李公諱弘植事跡碑)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