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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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住生活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집필자 | 이창언 |
[정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생활.
[개설]
의성군은 경상북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에 둘러싸여 있어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고, 내륙의 분지이기 때문에 대륙성 기후의 영향도 적게 받아 한서(寒暑)의 폭이 매우 심한 곳이다. 이렇게 지리적·환경적 영향으로 의성군의 가옥들은 ‘ㅡ’자형, ‘ㄱ’자형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근대화의 영향으로 전통 가옥의 기능이 축소되거나 소멸되었고, 일부는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거주하고 있다.
[주택 형태의 변화]
1970년대 이후 의성군의 가옥은 지붕 개량 사업으로 전통 초가집은 급격하게 사라진 상태이다. 초가지붕은 기와나 슬레이트로 교체되었고 대다수의 마을에서는 지붕뿐만 아니라 부엌, 화장실, 방 등을 개량하였다.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에서는 녹색 농촌 시범 마을로 지정되면서 거리를 정비하고 한옥을 개축하여 양옥으로 지었다. 이렇게 한옥이 양옥으로 바뀌면서 과거에는 다소 떨어져 있던 화장실이 집 내부의 공간으로 새롭게 생겨났고, 난방 방식은 온돌에서 기름 보일러로 바뀌는 등 대부분의 전통 가옥은 현대식으로 개축되고 있다.
[전통 가옥]
의성군의 전통 가옥 형태는 비안면과 같이 서남부 지역에 속해 기온이 비교적 온난한 곳은 대들보 아래에 방을 일렬로 배치한 형태의 ‘ㅡ’자형 홑집이 대부분이다. 그밖에는 대부분 ‘ㄱ’자형의 가옥 구조를 지닌다. 이러한 ‘ㄱ’자 형태는 안방과 부엌이 있는 ‘ㅡ’자형 구조 옆에 외양간이나 방, 헛간을 붙여 열 손실을 최대한 방지하고 있다.
전통 가옥은 특히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 사가(私家)의 목조 건물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인 의성 만취당[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69호]과 후산정사, 후송재, 유자정, 민산정, 자계정 등을 포함하여 약 30여 동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의 의성 만취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가의 목조건물 중 하나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이며 부호군을 지낸 김사원(金士元)[1539~1601] 선생이 1582년(선조 15)부터 3년에 걸쳐 완성한 가옥으로 자신의 호를 따서 만취당이라고 하였다. 특히 의성 만취당 현판은 조선의 명필가인 한석봉의 글씨로 잘 알려져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옆에 부속 건물이 붙어 있어 건물 평면이 ‘T’자형을 이루고 있다. 마루방 4칸, 온돌방 2칸을 이어서 배치하고 사면에 폭이 좁은 쪽마루가 있다. 지붕은 옆모습이 ‘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고, 부속 건물은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만취당은 수많은 전란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고 현재는 문중의 집회 장소나 경로당 구실도 함께 하고 있다.
2. 사촌리 안동 김씨 종택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는 안동 김씨 도평의공파(都評議公派) 후손들의 세거지로 알려져 있다. 사촌리 안동 김씨 종택은 의성 만취당 우측에 위치하며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ㄱ’자형 팔작지붕 건물이며, 사랑채는 정면 2칸 반, 측면 2칸 반의 ‘ㄴ’자형 팔작지붕 건물이다. 한편 사촌리 안동 김씨 종택은 서애 유성룡 선생의 외가이자 생가(生家)이기도 하다.
3. 사촌리 풍산 유씨 종택
1927년에 건립된 유태춘의 종택으로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안채는 한식기와의 팔작지붕 건물로 기단을 시멘트로 마감하였다. 벽체의 전면은 회벽으로 마감하고 배면은 제사로 처리하였다. 바깥채는 일식기와의 우진각지붕으로 역시 기단은 시멘트로 마감하였으며 전면에 블록의 가건물을 덧달아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4. 사촌리 후산정사
후산정사는 만취당 김사원의 위패를 모시고 후손들이 모여 춘추로 제향을 올리던 곳이다. 1747년(영조 23) 재사를 세우고 1749년 묘우가 완성되어 후산정사라 칭하였다. 그 후 100여 년 간 유지되다가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991년에 강당과 대문을 중건하고 울타리를 새롭게 단장하였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으로 동쪽으로 담장을 둘러 후산사를 지었다.
5. 사촌리 김성수 가옥
김성수 가옥은 의성 만취당 뒤쪽의 도로에 뒷담을 면하고 있는 가옥으로 만동 서숙(晩同書塾)이라고도 칭한다. 생원 진사 양시(兩試)에 합격한 김양범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원래는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에 있던 것을 1986년에 현재의 사촌리로 이건하였다. 콘크리트 기단 위에 3칸 규모의 방과 마루를 구성하였고, 앞쪽에는 툇간을 내었으며, 기둥에는 주련이 붙어 있다.
6. 사촌리 김진 가옥
김진 가옥은 김성수 가옥 앞에 자리 잡고 있으며 ‘ㄱ’자형의 사랑채와 안채가 ‘튼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는데 현재는 사랑채가 소멸되고 사랑채 좌측에 있던 고방 부분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7. 사촌리 김태생 가옥
김태생 가옥은 사촌 초등학교 전면에 있는 가옥으로 안채와 아래채로 이루어졌다.
8. 사촌리 유근하 가옥
유근하 가옥은 김진 가옥의 맞은편에 있는 가옥으로 문간채와 안채로 이루어졌다.
9. 사촌리 유기식 가옥
유기식 가옥은 유근하 가옥 옆에 위치하며 안채와 아래채로 이루어졌다.
10. 사촌리 유신하 가옥
유신하 가옥은 양진당 앞에 위치한 가옥으로 사랑채와 문간채, 안채 등으로 이루어졌다.
11. 사촌리 유인성 가옥
유인성 가옥은 유기식 가옥의 뒤편에 위치한 가옥으로 사랑채, 문간채 안채 등으로 이루어졌다.
12. 사촌리 민산정
민산정은 민산(閩山) 유도수(柳道洙)[1820~1889]가 귀산(龜山) 아래 터를 잡아 지은 것이다. 현재의 민산정은 2005년에 후손들이 터를 옮겨 이곳에 유도수 선생을 기리고자 다시 지은 것이다. 민산정의 뒤쪽으로는 자하산이 있으며 전면은 사촌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민산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툇마루를 설치하고 전면의 일부를 난간으로 둘렀다. 주변과 구분 짓는 담은 두르지 않았으며, 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의 구조로 전형적인 정자 건축물이다.
13. 후평리 김동주 가옥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김동주 가옥은 1686년 이 참봉이 건립한 99칸 가옥이었으나 개항기에 가세가 기울어 1932년 김동주가 매수하였다. 1970년 ‘의성 김동주 씨 가옥’이란 명칭으로 중요 민속 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었으나 1995년 화재로 안채가 소실되어 그 가치를 잃고 현재는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14. 의성 서계당(義城 西溪堂)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의 의성 서계당[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77호]은 남용진이 1780년(정조 4)에 지은 집으로 의성 지역의 일반적인 전통 가옥 구조처럼 간소하게 건축되었다. 동향으로 배치된 대문간을 들어서면 맞은편에 초당·고방 등이 있고, 우측은 남향으로 배치된 ‘ㅡ’자형의 사랑채와 ‘ㄷ’자형의 안채를 감싸고 있어 ‘튼ㅁ’자형의 평면 배치를 하고 있다. 안채는 4칸, 측면 3.5칸으로 되어있고 중앙의 2칸은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안마당의 폭과 같다. 안채의 서쪽에는 방앗간과 하인들이 지내던 3칸 초가, 우물 등이 있다.
15. 의성 소우당(義城 素宇堂)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의 의성 소우당[중요 민속 문화재 제237호]은 소우(素宇) 이가발이 19세기 초에 건립한 집으로 1880년(고종 17)에 개축하였다. 가옥은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튼ㅁ’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남측 전면에는 ‘ㅡ’자형 문간채가 있고 문간채의 서쪽에는 외측간이, 안채의 북서쪽에는 내측간이 있다. 가옥의 서쪽으로는 별도의 담장을 돌려 원림을 조성하고 중앙부에 안사랑채[별당]를 배치하였으며, 그 남쪽으로는 나무를 심어 정원으로 꾸몄다.
16. 의성 운곡당(義城 雲谷堂)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의 의성 운곡당[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74호]은 운곡(雲谷) 이희발이 영월 부사로 재직하던 1800년대 초기에 건립한 가옥으로 1920년대에 일부 개축되었다. 가옥의 안채는 사랑방과 고방 등이 같이 연결되어 있다. 평면 구성은 ‘ㅁ’자형인데 앞채의 좌우에 전면으로 나와 있어 날개집의 한 유형에 속하며, 안채의 왼쪽 뒤에는 사당이 있고 문간채는 개항기에 소실되었다. 평면 형태는 ‘ㄷ’자 형태의 안채와 그 앞 왼쪽에 위치한 ‘ㄱ’자형의 사랑채, 오른쪽의 ‘ㄱ’자형 고방이 중문간을 통해 안채와 상하 병렬로 연결되어있으며,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17. 의성 점우당(義城 漸于堂)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 157의 의성 점우당[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75호]은 영천 이씨의 동족마을에 1900년경에 세웠다고 전하며, 안채·사랑채·헛간채·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ㄷ’자형을 이루고 있고, 그 맞은편에 헛간채가 있어 튼‘ㅁ’자형 구조를 보이고 있다. 평면 구성이나 기법에서 독특한 점은 보이지 않지만 여러 세대가 함께 살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집이다.
18. 오봉 종택(梧峰宗宅)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251의 오봉 종택[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87호]은 오봉 사당(梧峰祠堂)을 포함해 6동으로 이루어진 조선 시대 가옥으로 아주 신씨 종택이다. 오봉사당에는 조선 시대 문과에 급제하고, 예안 현감을 지낸 신지제(申之悌)[1562~1624]의 위패를 모셨다. 신지제는 의성에서 관직 생활을 할 때 ‘장대 서원’을 세워 지방 고을 자제의 교육에 힘쓰기도 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맞서 싸운 바 있다. 오봉 사당은 아주 신씨의 종가인 낙선당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10여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4각으로 두른 흙 담장 중앙에 정남향을 향하고 있다.
[주거 현황]
2010년 말 현재 의성군 전체 가구 수 1만 5166호 중 의성읍에 3,692가구가 거주하고 있어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인다. 특히 18개 읍면 중 가구 수 상위 5개 읍면인 의성읍, 안계면[1,547가구], 금성면[1,211가구], 다인면[1,164가구], 봉양면[1,066가구]의 가구 수가 전체의 57%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황은 인구수와도 비례하여 전체 5만 8832명 중 의성읍에 1만 4730명이 거주하고 있어 가장 많은 수를 나타냈다. 가구 수와 마찬가지의 순서인 상위 5개 읍면의 인구수는 3만 3753명으로 나타나 전체의 약 57.4%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가장 적은 가구 수로 확인된 곳은 신평면으로 271가구에 불과했는데, 이는 전체의 1.8%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구 수 기준 하위 5개 읍면인 신평면, 안사면[301가구], 가음면[425가구], 춘산면[451가구], 사곡면[460가구] 등 5개 면을 합해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12.6%로 의성읍 한 곳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가구 수 및 인구수가 가장 많은 의성읍과 안계면의 면적 구성비가 각각 전체의 약 5.8%와 3.7%로 나타나 의성읍과 안계면이 의성군에서 가장 거주가 밀집한 도시형임을 알려주고 있다.
[주택 유형]
의성군의 주택 수는 2010년 말 기준 총 2만 6938호로 주택 보급률은 177.6%에 달한다. 그중 다가구 주택 240가구를 포함한 단독 주택이 87.9%인 총 2만 3679호로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밖에 아파트 1,827가구, 연립 주택 295가구, 다세대 주택 327가구, 비주거용 건물 내 주택 570가구의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의성군에 아파트가 지어진 것은 1980년대부터이며, 1990년대에 905호가 건축되는 등 가장 활발하게 증가했다. 2010년 말 현재 아파트의 수는 전체 주택 수의 약 12%를 차지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의성읍[1,643가구]에 있으며, 안계면[165가구]과 봉양면[19가구]에 일부가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