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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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弘之 |
영어음역 | Bak Hongj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아네스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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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8월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몰년 시기/일시 | 1908년4월 15일 |
추모 시기/일시 | 2000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
기념물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취간림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박홍지(朴弘之)는 1881년[혹은 1882년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순종 1)은 헤이그 밀사 사건과 그에 따른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7조약[일명 한일신협약]에 의한 한국의 통치권 약화, 한국군 강제 해산 등으로 각지에서 의병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박홍지는 1907년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동, 구례에서 활약하던 고광순(高光洵) 의병진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9월 화개면장과 동장의 설득으로 귀순했다가 다시 박매지(朴每之)와 임봉구(任鳳九)가 이끄는 의병진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40여 명의 의병과 함께 화개면을 중심으로 광양 일대에 걸쳐서 총기와 탄약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같은 해 4월 15일 동지 두 명과 함께 적량면 동점마을에 총기와 탄약을 구하러 잠입했다가 일본 경찰과 일본군 수비대의 공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008년 지리산항일투쟁기념사업회에서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취간림에 지리산 항일투사 기념탑[악양 항일투사 추모탑비]을 세웠는데, 여기에는 박홍지 등 지리산 일대에서 일제와 맞서 싸운 대표적인 항일 독립투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