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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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奇攝 |
영어음역 | Jo Giseop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흥리 하신흥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아네스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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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8월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10월 5일 |
몰년 시기/일시 | 1908년 |
추모 시기/일시 | 2000년 |
추모 시기/일시 | 2008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흥리 하신흥 |
기념물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취간림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조기섭(趙奇攝)은 1881년(고종 18)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신흥리 하신흥에서 태어났다. 1907년(순종 1)은 헤이그 밀사 사건과 그에 따른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7조약[일명 한일신협약]에 의한 한국의 통치권 약화, 한국군 강제 해산 등으로 각지에서 의병 운동이 일어났다. 조기섭은 1907년 8월부터 하동 지역을 중심으로 박매지(朴每之), 이성로(李成魯)가 이끄는 의병 부대에 소속되어 항일 무장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기섭은 박매지 의병진에서는 손몽상(孫夢尙) 후군장의 보좌역을 맡았고, 이성로 의병장을 도와서 청암면을 근거지로 일본 군경에 맞섰다. 1908년 10월 5일 청암면 안양리 전투에서 의병 수십 명과 함께 일본군과 싸우다 손몽상과 함께 일본 수비대에 체포되었다. 10월 6일 일본 경찰이 현지 조사를 위해 운곡면[현 옥종면] 청룡동을 향하여 출발하자 탈출을 시도하던 중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008년 지리산항일투쟁기념사업회에서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취간림에 지리산 항일투사 기념탑[악양 항일투사 추모탑비]을 세웠는데, 여기에는 조기섭 등 지리산 일대에서 일제와 맞서 싸운 대표적인 항일 독립투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