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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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宗仁 |
영어음역 | Yi Jongi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90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현덕 |
출생 시기/일시 | 1869년 6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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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몰년 시기/일시 | 1947년 1월 23일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906 |
묘소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하성마을 |
비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 |
비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배다리장터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종인(李宗仁)은 1869년(고종 6) 6월 15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90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이종인은 박영묵(朴永默)·정상정(鄭相正)·정의용(鄭宜鎔)·추홍순(秋鴻順) 등과 동지 33명을 규합하여 일신단(一身團)이란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약하였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고전면 주교리 장날, 일신단원이 단상으로 올라가 의거의 취지를 설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1천여 명의 장터 군중들이 합세하였다. 이에 조선인 경찰 박도준(朴道俊)과 일본 헌병 세 명이 출동하여 제지하자 일신단은 이들의 총검을 탈취하고 제복을 벗겨 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다음날 헌병과 경찰이 총을 난사하면서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로 쳐들어오자, 이종인과 박영묵·정상정·정의용 등은 부녀자와 아이들을 삼봉산(三峰山)에 피신시키고, “어제의 의거는 우리 네 명이 한 일이며, 그 외에는 모두 장꾼들이다. 책임은 우리에게 있으니 우릴 체포하라!”라고 외치며 순순히 포승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동지 최알밤[본명 미상]이 피격되었다.
이종인 등은 하동경찰서에 압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 그 해 5월 1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란 죄목으로 징역 2년 6월형에 언도되어 진주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정부의 포상자 공적 조서에 의하면 1947년 1월 23일 사망했다고 하는데, 혹은 1944년 1월 21일이라는 설도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우복리 하성마을에 있으나 표지석은 없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982년 3월 1일 일신단으로 활동했던 이들의 의로운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 삼일 독립운동 의거기념비가 세워졌고, 이들이 만세 운동을 벌였던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배다리장터에는 1985년 12월 30일 하동군 고전면민 만세 운동 기념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