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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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一身團 |
영어음역 | Ilssinda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추경화 |
설립 시기/일시 | 1919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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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9년 4월 6일 |
성격 | 독립운동 단체 |
설립자 | 박영묵 등 33인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있었던 독립 운동 단체.
[설립 목적]
일신단(一身團)은 오직 한 뜻, 한 가지, 한 몸처럼 뜻을 모아 투쟁한다는 의미의 비밀 항일 운동 조직으로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출신 독립지사들이 뜻을 모아 3·1 운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금남면민과 고전면민 33명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주교리 일명 배다리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장터 이곳저곳에 숨어 있던 일신단원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자 배다리장터에서 항일 시위가 있다는 소문은 듣고 각처에서 모여든 장꾼들이 다 같이 독립 만세를 제창하자 그 기세는 산이라도 옮길 수 있을 것 같이 크고 대단하였다.
1,000여 명의 장꾼이 고창하는 소리에 일본인 순사와 조선인 순사 박도준 등 세 명이 달려들자 일신단원 33명이 호랑이처럼 달려들어 그들을 붙잡아 총과 칼을 빼앗고 모자와 제복을 벗긴 후 이들을 똑바로 세우고 “너희들도 우리와 같이 만세를 부르지 않으면 그냥 두지 않겠다”라고 동참을 강조했다. 일본인 순사는 시장 중앙에 있는 소금 가마니 위에서 옷이 벗겨진 채로 두 손을 들고 서툰 우리말로 조선 만세를 외치다가 진교주재소로 도주하였다.
일신단원들은 일본 경찰이 올 것을 알고 미리 시장에서 철수하였고, 파장이 될 무렵에 나타난 일본 경찰과 헌병들은 주동자들을 수색하였으나 이미 일신단원들이 몸을 피한 뒤였다. 다음날 아침 일본군 헌병 20여 명과 경찰 10명이 나타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지소마을 건너편 앙경산록에 진지를 구축하고 총구를 겨누고 공포탄을 쏘며 동네 입구로 몰려오자 일신단 대표인 박영묵(朴永默)이 여자들과 어린 아기들을 마을 뒷산으로 피신시키고 용감하게 일본군 앞으로 나가서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말하고 순순히 잡혀 갔다.
박영묵, 이종인(李宗仁), 정상정(鄭相正), 정의용, 정재기(鄭在基), 추홍순(秋鴻順) 등은 모두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정의용을 제외한 5명은 모두 정부 포상을 받았다. 박영묵, 이종인, 정상정 항일투사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홍순, 정재기 항일투사는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일신단원들이 결의한 연판장은 현재까지 발굴되지 않았는데 추홍순이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집 부근에 숨겨두었다가 일제의 조사가 시작되자 밤중에 소각시켜 버린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