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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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八景樓 |
영어의미역 | Palgyeongnu Pavili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651-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정화 |
건립 시기/일시 | 19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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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651-2 |
성격 | 정자|누정|누각 |
양식 | 팔각 목조 와가 |
정면 칸수 | 8칸 |
측면 칸수 | 8칸 |
관리자 | 팔경루 보존위원회[회장 심경보]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에 있는 누각.
[개설]
팔경(八景)이란 ‘악양 일대의 여덟 가지 풍광’을 일컫는 말로, 곧 ‘소상경관(瀟湘景觀)’ 또는 ‘소상팔경’이라 부르는데, ‘평사낙안(平沙落雁)·원포귀범(遠浦歸帆)·산시청람(山市晴嵐)·연사만종(煙寺晩鐘)·어촌석조(漁村夕照)·동정추월(洞庭秋月)·소상야월(瀟湘夜月)·강천모설(江天暮雪)’ 등을 가리킨다.
[위치]
팔경루(八景樓)는 악양 솔봉(率峰) 기슭의 섬등(剡嶝) 악양천(岳陽川) 가 취간림(翠澗林) 내에 위치한다. 악양 일대에서 경관이 수려하기로 유명한 곳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취간림은 악양면사무소에서 남쪽으로 200m 지점에 있는데, 취간림 맞은편에 악양중학교가 위치한다.
[변천]
1931년 악양 지역 인사들이 고려 말 하동 악양에 은거하였던 한유한(韓惟漢)을 흠모하여 악양천 섬등에 모한정(慕韓亭)을 건립한 후 취간정(翠澗亭)으로 개명하였다. 이후 취간정은 없어지고 숲만 번창하여 취간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6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92년 악양 출신의 재일 교포 홍갑동(洪甲童)에 의해 취간정 자리에 팔경루가 건립되었다. 홍갑동은 악양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징용되어 일본에서 터전을 잡고 살았다. 만년에 고향을 그리워하던 중 악양면장과 동생인 홍갑조(洪甲祚), 홍화용(洪和勇)에게서 고향 소식을 듣고 흔쾌히 정자를 지어 하동군 악양면에 기증하였고, 악양면에서는 주변의 경관을 본떠 팔경루라 이름 하였다.
[형태]
정면 8칸, 측면 8칸 규모의 누각이다. 팔각뿔 형태의 팔모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목조 기둥에 푸른빛 기와가 덮여 있다.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다. 전체 건평은 766.94㎡[232평]이다.
[현황]
취간림은 2011년 현재 악양면민의 생활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팔경루는 그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취간림 내 팔경루 주위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실을 증언하였던 고(故) 정서운 할머니를 추모하는 평화의 탑과 지리산 항일투사 기념탑(智異山抗日鬪士記念塔)이 자리하고 있다. 고 정서운 할머니는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 하덕마을 출신으로, 일본의 위안부에 대해 최초로 국제 증언을 하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하동군 악양은 일본군에 대항하여 항일 투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던 곳으로, 여러 차례 전투와 함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취간림은 이러한 역사적 아픔과 교육적 교훈을 담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악양국악회 사무실인 청학정(靑鶴亭)이 팔경루를 바라보며 위치하고 있다. 현재 팔경루는 팔경루보존위원회[회장 심경보]가 조성되어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팔경루는 하동군 악양면 악양천의 수려한 경관과 한유한을 위시한 유구한 역사적 유래를 배경으로 하여, 고 정서운 할머니를 비롯한 악양 출신의 수많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탑이 위치한 취간림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팔경루 건립과 관련한 재일 교포 홍갑동의 애향심이 더해져, 팔경루를 포함한 취간림은 악양면민에겐 정신적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장소임과 동시에 후세대들에겐 애향심을 고취할 교육적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