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5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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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言論 出版 |
영어공식명칭 | Journalism & Publication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혜경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알리고 주장을 전달하기 위하여 여론을 형성하거나 인쇄물을 제작·복제하여 판매하거나 배포하는 활동의 총칭.
[개설]
언론은 신문이나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 SNS 등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나 사안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말하며, 출판은 저작물의 배포나 판매를 위하여 문서·회화·사진 등을 복제·공표하는 제작 활동을 말한다. 대구광역시의 언론·출판 활동은 신문과 방송, 잡지 등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해방 이후부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대구광역시 언론·출판의 역사]
대구광역시의 근대 최초 언론·출판은 1901년 6월 대구에 거주하던 일본인 단체 ‘일본인회’에서 발행한 일본어판 『달성주보(達成週報)』이다. 출판 당시 등사판을 사용하여 신문을 발행하였으며 제4호까지 발간하였다. 1905년 1월 발간된 『조선(朝鮮)』, 1908년 10월 1일 발행된 『대구신문(大邱新聞)』, 1928년 10월 1일 발행된 『대구일보(大邱日報)』 등은 모두 대구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의 동정을 알리는 일본어 출판물이었다.이 시기 언론·출판 가운데 지역 최초로 한국인이 발간한 매체는 대구에 거주하던 한국인 한익동이 1924년 발간한 『대구상보(大邱商報)』였다. 『대구상보』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혼용한 매체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검열과 압박에 의하여 대구를 비롯한 각 지역의 언론·출판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었다. 다만 서울에서 발행되었던 『동아일보』, 『조선일보』, 『시민일보』 등의 지역 지국을 통한 간접적인 언론·출판 활동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3일 대구광역시에서 대구 시민을 위한 한글 지역 신문 『대구시보(大邱時報)』가 발간되면서 지역 언론·출판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대구시보』의 뒤를 이어 1945년 10월 11일 『영남일보(嶺南日報)』가 창간호를 냈으며, 1945년 10월 15일에는 진보민주주의 신념을 앞세운 『민성일보(民聲日報)』가, 1945년 11월 1일에는 『경북신문(慶北新聞)』이, 1946년 3월 1일에는 『남선경제신문(南鮮經濟新聞)』이, 1946년 7월 3일에는 『부녀일보(婦女日報)』가 차례로 발행되었다.
해방 이후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인 한국전쟁 발발 사건을 대구에 최초로 알린 언론사는 『영남일보(嶺南日報)』였다. 『영남일보』는 한국전쟁 보도 이후 전성기를 맞았다. 한편 같은 시기 경영난에 시달리던 『대구매일신문』은 1950년 10월 1일 자로 천주교 대구교구에 인수되어 다시 한번 도약의 계기를 맞기도 하였다. 1951년 9월 『대구경제신문』이, 1953년 6월 1일 『대구일보』가 창간되었다.
1950년대 각 언론사들은 정치·사회사와 관련되어 폐간과 개간을 거듭하다가 1987년 6·29선언으로 언론 규제가 풀리면서 1990년 이후 『경북일보』, 『경북매일』, 『우리신문』, 『경상일보』, 『광역일보』, 『경북도민일보』, 『영남투데이』, 『경상매일신문』 등이 잇달아 생겨나고 일부는 경영난 등의 이유로 폐간되었다.
대구광역시 지역 언론 단체로는 1966년 11월 대구·경북 지역 전현직 언론인들의 모임 ‘달구벌클럽’이 있다. 대구 지역 언론의 선진화와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된 달구벌클럽은 학술 심포지엄 개최, 토론회, 세미나 등을 마련하여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1999년 11월에는 달구벌클럽이 발전적 해체를 하고 2001년 3월 대경언론인회 부설 ‘대구경북언론발전연구회’가 설립되었다. 2006년 12월 달구벌클럽과 대구경북언론발전연구회가 통합된 ‘사단법인 대구경북언론클럽’이 창립되었다. 대구경북언론클럽은 2010년 4월부터 회지 『팔공저널』을 발간하여 지역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구광역시는 언론사를 통한 출판물 간행뿐만 아니라 방송과 라디오를 통하여 사실을 알리고 여론을 형성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규 방송은 1927년에 첫 전파를 쏘아 올린 경성방송국이다. 대구에는 1939년 4월 19일 조선방송협회 대구 출장소[현 KBS 대구방송국]가 개국하였다. 경성방송국은 해방 후 1947년 국영방송 서울중앙방송으로 이름을 바꾸어 출범하였고, 1973년 한국방송공사[KBS, KoreanBroadcasting System]로 개편하면서 공영방송으로 출범하였다. KBS 대구 출장소는 1986년 KBS 대구 방송총국으로 승격하였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으로 대구광역시와 부산광역시를 제외한 모든 방송국이 파괴되거나 소실되어 전시 상황 중에는 대구방송국이 중앙방송국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1975년 3월 3일 KBS가 국영 서울중앙방송국에서 한국방송공사로 체제가 바뀌면서 대구광역시의 KBS 대구방송국도 한국방송공사로 귀속되어 조직이 개편되고 1974년 2월 보도과 신설로 대구 지역 취재 및 보도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한편 1959년 전국 최초 지방 민간 종교 방송국 CBS가 대구에서 출범하였다. CBS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계명대학교 캠퍼스 안에 방송국 사옥을 만들어 방송하였다. 1963년 라디오방송국인 대구문화방송국[이하 대구MBC]이 탄생하였다. 대구MBC는 1963년 8월 8일 아침 8시에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 동성로3가 16번지[현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3가]에서 호출부호 HLCT, 주파수 800KHz, 출력 1㎾로 첫 전파를 발사하였다.
1980년 언론통폐합 조치로 방송 전반에 대한 개혁 논의가 제기되었고 민영방송이 금지되면서 지역 민영방송도 폐쇄되었다. 1990년 민영방송 금지 조치가 해제되고, 1994년 8월 10일 TBC가 대구경북 지역 민영방송사업자로 선정되었다. TBC는 1997년 12월 1일 오전 8시 호출부호 HLDE-FM, 주파수 99.3MHz, 출력 5㎾ FM으로 라디오방송을 시작하였다.
[현황]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대구광역시에서 발행되는 정기간행물은 2021년 10월 기준 일반 일간신문은 『뉴영남매일』, 『대구광역일보』, 『대구매일』, 『대구신문』, 『대구일보』, 『대영매일신문』, 『매일신문』, 『영남일보』 등 8개이며, 일반 주간신문은 『비슬신문』, 『대구팔공신문』 등 7개, 특수 주간신문은 『대구포커스신문』, 『대한시사신문』, 『시니어매일』 등 19개이다. 이밖에 인터넷신문이 무려 158개에 달하고 있다. 잡지는 『대경포럼』, 『문예세상』, 『아람문학』, 『학원 저널』 등 57개이다. 이밖에 일상생활에 대한 인내와 고지 등을 하는 정보간행물과 책자 형태가 아닌 기타 간행물도 다수 발간하고 있다.
방송국은 라디오방송국과 TV방송국으로 나눌 수 있다. 라디오방송국은 KBS대구, 대구문화방송, EBS FM, 대구교통방송, 대구CBS, 대구극동방송, cpbc 대구가톨릭평화방송, 대구불교방송, 대구원음방송, 대구국악방송, 성서공동체FM, AFN Korea 등이 있으며, TV방송국으로 KBS대구, 대구문화방송, TBC, EBS DTV, AFN Korea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