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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633
한자 鄭然灌妻南原梁氏遺蹟碑
영어의미역 Monument for Jeong Yeongwan's Wife Namwon Yang Clan
이칭/별칭 정부인 남원 양씨 효열비(貞婦人南原梁氏孝烈碑),정부 유인 남원 양씨 유적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102-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길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현 소재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102-2 지도보기
성격 유적비
관련 인물 남원 양씨(南原梁氏)|정연관(鄭然灌)|정환교|김황|정직교(鄭直敎)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135㎝[높이]|42㎝[너비]|17㎝[두께]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에 있는 정연관(鄭然灌)남원 양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남원 양씨(南原梁氏)는 사간원 대사간을 지낸 양사귀(梁思貴)의 후손으로, 아버지 양재룡(梁在龍)과 어머니 진양 하씨(晉陽河氏) 사이에서 났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장애인인 정연관과 결혼하여 개가하지 않고 열심히 살면서 시부모를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장사를 하여 재산을 모아서는 집안 조카 정환교를 양자로 세워 집안을 일으켜 세웠다. 남원 양씨는 아들 정환교가 일하는 광양의 광산에 따라가 살다가 그곳에서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건립 경위]

아들 정환교가 어머니 남원 양씨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77년에 비석을 세웠다.

[위치]

정부 유인 남원 양씨 유적비(貞婦孺人南原梁氏遺蹟碑)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102-2번지 영당마을에 있다.

[형태]

비 사방을 쇠 홍살 울타리로 둘렀다. 비석은 비좌(碑座), 비신(碑身), 가첨석(加檐石)[지붕돌]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35㎝, 너비 42㎝, 두께 17㎝이다.

[금석문]

비 앞면에는 ‘정부인 남원 양씨 유적비(貞婦人南原梁氏遺蹟碑)’라 적혀 있고, 비 뒷면에는 의성 김씨(義城金氏) 중재(重齋) 김황(金榥)이 지은 기문이 새겨져 있으며, 글은 남원 양씨의 재종질 정직교(鄭直敎)가 썼다.

[현황]

문중에서 관리하며, 하동군청 문화관광과의 비지정 문화재 시설 사업에 따라 옥종면에서 정비를 맡아한다.

[의의와 평가]

양자가 자신의 양모의 생애를 기리려고 세운 비라는 데 의의가 있다. 장애를 가진 남편에게 의리를 다하고, 시부모를 봉양하며 가문을 유지하였던 남원 양씨의 사례는 가족 윤리가 쇠퇴한 오늘날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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