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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779
한자 晉陽河氏
영어의미역 Jinyang Ha Clan
이칭/별칭 진주 하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용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집성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병천리 병천마을 지도보기
성씨 시조 하공진|하진|하성

[정의]

하공진·하진·하성 등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개설]

흔히 진양 하씨가 익숙하지만 근래에 들어 진주 하씨(晉州河氏)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진주의 토성이자 명문인 진양 하씨는 서로 간의 세계가 밝혀지지 않은 하공진(河拱辰)·하진(河珍)·하성(河誠) 세 계열이 이어져 오고 있다. 고려 초·중기 이전의 선계가 확인되고 있지 않다. 물론 진양 하씨가 시조를 달리한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세 계열은 확인할 길이 없으나 신라 말을 전후하여 조상을 같이 했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진양 하씨는 고려 초에 이미 재경 관인(在京官人)과 재지 세력으로 분화하였다고 보고 있다. 하공진 등은 전자에 해당한다. 하즙(河楫)[1303~1380]의 직계 파시조인 하진도 하공진의 예와 비슷했을 것이다. 재경 관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연원]

진양 하씨는 나말 여초(羅末麗初) 사회 변동기에 진양 정씨·진양 강씨·진주 소씨 등과 함께 진주 지역의 지배 세력으로서 고려 태조 왕건(王建)에 의해서 본관을 진양[진주]로 하는 토성(土姓)을 분정(分定) 받았던 세력이었다. 그러면 진양 하씨의 선조도 나말여초 중소 호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말 서라벌 인근을 제외하고 한반도의 큰 고을치고 호족의 세상이 아닌 곳이 없었다. 진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쩌면 진주 지역은 어느 지역보다 대호족이 세력을 이루어 지배하기에 유리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갖추고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후삼국 쟁패기였기 때문에 그 세력은 안정되지 못하여 불과 20여 년 사이에 강주장군(康州將軍) 윤웅(閏雄), 천주절도사(泉州節度使) 왕봉규(王逢圭), 강주장군(康州將軍) 유문(有文) 등 기라성 같은 대호족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대호족이 도태된 이후 진주 지역은 그들의 세력 하에 있었던 중소 호족 세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 가운데 훗날 진주 토성으로 불리는 하씨·강씨·정씨·소씨가 중심 세력을 이루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940년 태조 왕건에게 토성을 분정받았다. 이후 그들은 재지 세력으로서 읍사(邑司)의 구성원이 되고, 그들이 중심이 되어 진주 지역을 분할 지배하였던 것이다.

[입향 경위]

진양 하씨는 고려 후기 이후 하공진의 시랑공파(侍郞公波), 하진의 사직공파(司直公波), 하성의 단계공파(丹溪公波)를 막론하고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특히 시랑공파 하륜(河崙)[1347~1416]은 태종조에 영의정으로서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닦았고, 사직공파 하즙의 증손 하연(河演)[1376~1453]은 세종조에서 영의정을 지냈다. 하륜의 가계는 직계보다 그의 숙부 하윤구(河允丘) 계열에서 훗날 각재(覺齋) 하항(河沆)[1538~1590],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1553~1612} 등 남명 연원의 뛰어난 인물이 배출되었다. 이웃 진주의 대성인 진양 하씨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언급되지 않은 점이 주목된다. 이는 진양 하씨들이 1906년까지 진주에 속했던 하동의 옥종면에 주로 세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황]

통계청의 성씨와 본관 자료에 의하면 2000년 현재 전국의 진양 하씨는 2만 2961가구 7만 1815명이며, 하동 지역에 거주하는 진양 하씨가 316가구 825명이다. 하동 지역의 진양 하씨 집성촌으로는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병천리 병천마을을 들 수 있다. 옥종면은 1906년에 이르러 진주에서 하동으로 편입되었다. 진양 하씨 단지공파(丹池公派)의 후손 하진강(河鎭岡)·하진학(河鎭學) 형제가 조선 정조 때 산청군 덕산에서 병천으로 이주하여 터를 잡음으로써 동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한때 60여 세대의 동족 마을이었으나 산업화 이후 많은 세대가 도시로 떠나고 현재 병천마을 61가구 가운데 진양 하씨가 20여 가구를 차지한다.

[관련 유적]

병천마을진양 하씨 동족들은 1918년 입향 선조들을 제향하는 재실인 운천재(雲川齋)를 건립하여 조상들의 유업을 기리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외 진양 하씨와 관련한 유적으로는 경현사(景賢祠)모한재(慕寒齋)를 들 수 있다. 경현사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에 소재하는데,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1377~1438]과 그의 동생 하경리(河敬履), 양정공의 아들 하한(河漢)[?~1460]과 손자 경절공(敬節公) 하숙보(河叔溥)[?~1501]를 기리는 사당이다. 1990년 1월 18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1호로 지정되어 보호·관리를 받고 있다. 모한재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776번지에 있는 고가이다.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가 창건한 이후 몇 번 중수를 하였다. 1996년 3월 1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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