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8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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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涵月亭 |
영어의미역 | Hamwoljeong Pavili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 64-2[월횡길 16-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강정화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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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6년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 |
성격 | 정자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목조 슬레이트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관리자 | 함안 조씨 문중[조홍래]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에 있는 개항기 때의 정자.
[개설]
함월정(涵月亭)은 횡구(橫溝) 조성택(趙性宅)[1827~1890]이 만년에 장수(藏修)[학문을 할 때 조금도 변함없이 열심히 한다는 의미]하던 곳이다. 조성택의 자는 인수(仁叟), 호는 횡구,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 거주하였던 월고(月皐) 조성가(趙性家)[1824~1904]의 동생이며, 형과 함께 노사(盧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조성가가 쓴 조성택의 행장에 의하면,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의 안산(案山)이 가사산(佳士山)이고 그 아래로 도덕천(道德川)이 마을을 감싸며 흐르는데, 시냇물이 흘러와 함월정 앞에서 모여 못이 되었다. 밤이 되면 그 못에 달이 잠기고, 그 맑은 달빛이 정자를 가득 비춘다고 하여 함월정이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위치]
옥종중학교에서 지방도 1005호선을 따라 단성 방면으로 가다가 2㎞ 지점에서 월횡천을 끼고 좌측으로 가면 산기슭에 마을이 보이는데, 이 마을이 바로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이다.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 앞 월횡교에서 우측을 바라보면 약 30m 지점의 월횡천 가에 함월정이 위치한다.
[변천]
창건 연대가 자세하지 않으나, 개항기 때로 추정된다. 조성택이 만년에 조성한 후, 조성택의 4형제가 함께 독서하는 장소 또는 산청·진주·합천 등 인근 학자들의 강학 장소로 활용되었으며, 많은 학자들의 기문과 차운시가 남아 전한다. 조성택이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이 흐른 1924년 봄에 조성택의 후손 조용건(趙鏞建)이 중수하였고, 1976년 후손들이 재건축하였다. 이당(而堂) 권재규(權載奎)의 「함월정중수기(涵月亭重修記)」가 전한다.
[형태]
사각 목조 구조에 양식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홑처마로 되어 있다. 방이 2개이며, 가운데는 대청마루이고 양쪽 방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다. 천장에는 서까래가 노출되어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함월정은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에 거주하는 함안 조씨(咸安趙氏) 문중[조홍래]에서 관리하고 있어 보전이 꽤 잘된 상태이다.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 월횡마을 뒷산의 월봉(月峰)을 마주하고, 시골 마을 시내치고는 꽤나 널찍한 월횡천을 끼고 있어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그러나 이에 비해 건물은 현대식을 가미한 재건축이 이루어져 격조가 떨어진다. 현재 함월정에는 역대로 이 정자를 두고 차운한 시가 빼곡히 걸려 있다. 함월정 좌우에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1990년 애국 훈장을 받은 조무준(趙武駿)[1918~1989]의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성택의 문중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하동 지역에서 전라도의 노사학맥(盧沙學脈)을 계승한 대표적인 가문이다. 조성택의 형인 조성가는 영남 지역의 노사학파 3대 학자 중 한 사람이다. 당시 하동 지역은 여느 시기와 달리 당쟁과 학맥을 초월하여 학자들 간의 활발한 교유가 진행되었는데, 함월정은 그러한 교유 활동의 대표적인 장소였다. 함월정을 두고 읊은 수십 편의 시가 이를 증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