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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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七夕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집필자 | 이하범 |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음력 7월 7일에 행하는 풍속.
[개설]
칠석은 세시 명절의 하나로, 헤어져 있던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만나는 날이라고도 한다. 칠석은 이날은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들이 놓은 오작교에서 1년에 1번씩 만났다는 설화에서 비롯되었다.
중국 주(周)나라에서 발생하여 한대(漢代)를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지며 윤색을 거듭하여 지금까지 구비전승 되었다. 과거 농본 사회에서는 칠석을 큰 명절로 여겼으며 두레꾼들의 단합을 강조하고 농사일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한 날이기도 하였다. 칠석날에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풍속이 행해졌다.
[연원 및 변천]
칠석날 설화와 관련한 풍속은 삼국 시대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 가운데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에 있는 덕흥리 고분 벽화에 견우와 직녀 설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그림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에는 공민왕이 몽고의 왕후와 더불어 칠석날 궁궐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에 제사하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節日製)의 과거를 실시한 기록이 있다.
궁중 밖의 민간에서 칠석의 풍속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모습은 『동국 세시기(東國歲時記)』 등의 문헌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동국 세시기』에 의하면, 옛날 서당에서는 학동들에게 견우·직녀를 시제(詩題)로 시를 짓게 하였다.
또 옷과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폭의(曝衣)와 폭서(曝書) 풍속이 있었다. 여름 장마철에 장롱속의 옷가지와 책장의 책에 습기가 차면 곰팡이가 끼게 되므로 이를 막기 위한 것이다. 한편 여인들이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를 비는 걸교(乞巧) 풍속이 있었는데, 걸교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풍속이다.
칠석날 새벽에 부녀자들이 참외, 오이 등의 과일을 상에 올려놓고 절을 하며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빈다. 저녁에 상 위로 거미줄이 쳐 있으면 하늘에 있는 직녀가 소원을 들어준 것이라 여기고 크게 기뻐하였다고 한다.
다른 지방에서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그 위에 재를 담은 쟁반을 올려놓은 뒤, 별에게 바느질 솜씨가 좋게 해달라고 빌고, 다음날 아침 재위에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어 바느질을 잘하게 된다고 믿었다.
별과 조상과 자연과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풍속도 지역과 가정에 따라서 행해졌다. 지역에 따라서 칠석제, 용왕제, 밭제 같은 제사를 지내고 사당에 천신(薦新)하며 밀국수, 밀전병, 호박도래전 등 시절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칠석음식으로 밀전병을 만들어 먹고 칠석놀이라 하여 술과 안주를 갖추어 가무로 밤이 깊도록 놀기도 한다.
[절차]
아낙들은 아기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면서 백설기를 쪄서 칠성제를 올리기도 했는데, 칠성제는 정갈하게 지내는 것이라 소찬으로 준비하고 흰무리를 빚는 것이 원칙이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군산 지역의 서수면, 임피면, 성산면, 나포면 지역에서는 칠석날 술멕이날과 시암제[샘제]행사를 같이하였다. 두레꾼들이 마을에서 우물을 깨끗이 치우고 정결하게하면, 각 가정마다 시루떡을 쪄서 우물 옆에 두었으며 두레꾼들에게는 술과 안주를 내왔다.
청년들은 솔불놀이라 하여 달집 짓기와 비슷하게 이웃 마을과 놀이를 벌여 즐기고, 진 마을은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며, 이긴 편의 마을을 함부로 방문할 수도 없었다.
농사 절기상으로는 세벌 김매기가 끝나고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 하여 한여름철의 휴한기에 접어드는 탓으로 호미걸이 등을 놀면서 휴식을 취했다. 이때 술과 떡, 안주를 준비하여 놀고 풍물판과 굿이 꾸려지는 마을 축제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