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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운동사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534
한자 民衆運動社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5년 1월 25일연표보기 - 민중운동사 사건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25년 12월 3일연표보기 - 민중운동사 사건 종결
현 소재지 광주 지방 법원 군산 지청 검사 분국 - 전주 지방 검찰청 군산 지청[전북 군산시 법원로 70[조촌동 880]]
성격 민족 운동
관련 인물/단체 김영휘|임혁근|김병숙|조용관|임종환|장일환|김희영|이봉길|임영택|전북 민중 운동자 동맹

[정의]

1920년대 전라북도 지방의 대표적인 민족 운동, 계급 운동 단체인 전북 민중 운동자 동맹의 기관지인 『민중운동』 편집 위원들이 탄압 받았던 사건.

[개설]

민족 해방, 계급 해방을 목표로 하는 전북 민중 운동자 동맹은 도(道)를 단위로 하는 사상 단체 중에서 가장 먼저 성립되었다. 전북 민중 운동자 동맹의 기관 잡지인 ‘민중 동맹’의 사무소는 군산에 있었다. 편집 위원들이 경성에서 만들어진 지형을 군산 사무소에서 검수, 교정하는 도중에 일제 경찰에 의해 피체당하는 ‘민중운동사 사건’으로 출판이 좌절되고 전북 민중 운동자 동맹의 중심 인물이 처벌되었다.

[역사적 배경]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지역에는 많은 부문 운동 단체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전국적인 세력 확장과 조직화를 꾀하고 있던 서울파와 연계하여 사회 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전국 최초의 도 단위 사상 운동 단체인 전북 민중 운동자 동맹을 성립시켰다. 대중 단체를 조직하고, 노동 운동, 소작 쟁의 등을 지원하였으며, 기관 잡지인 『민중운동』을 발간하고 강연회·추도회 등을 개최하기도 했다.

[경과]

전북 민중 운동자 동맹은 기관 잡지 『민중운동』을 만들었는데, 『민중운동』 발행에 대한 책임은 편집 위원들이 맡았으며 사무소는 회원인 조용관이 운영하는 벽파 여관에 두었다. 1925년 1월 25일 기관 잡지인 『민중운동』의 발행을 맡은 편집 위원들이 경성에서 만들어진 지형(紙型)을 군산 사무소에서 검수·교정하는 도중 일제 경찰에 의해 피체를 당하였다. 일제는 이를 계기로 전북 민중 운동자 동맹 회원 약 70여 명을 구금하였다가 9명을 군산 지청 검사국에 기소하였다.

기소된 9명은 전부 보석되었는데 ‘군산 형무소 문전에는 수백 명의 군중이 환영을 하였고, 군산 각 단체의 축연은 자못 굉장하였다.’고 당시 관경이 보도된 것으로 보아 전북 민중 운동자 동맹은 일반 대중, 대중 단체들과 긴밀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민중운동』은 일제 경찰에게 압수되어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원고 제목이 기록에 남아 있어 이 잡지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원고의 집필자와 제목을 살펴보면 장일환은 미국 공산당으로부터 조선 동지들께 일본 보선과 무산당의 대두 저미한 제 2의 전운 영정변(英政変)과 반동의 증좌, 김영휘는 중국 동란과 이후의 태평양, 이정윤은 기근에 대한 견해, 그리고 조용관은 최근 러시아[露西亜]의 국가 조직, 이광수는 임은노예(賃銀奴隸)에 대한 일고찰, 임종환은 노동 조합 문답, 이강하는 농민에게 돌아가자 등이다.

[결과]

일제가 ‘민중운동사 사건’을 일으킴으로 인해 출판은 좌절되었다. 기소된 회원 9명은 전주 지방 법원 군산 지청에서 두 차례에 걸쳐 공판을 받았는데,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대구 복심 법원에서 김영휘·임혁근·김병숙·조용관·임종환·장일환에게 각 8개월, 김희영·이봉길·임영택에게 각 6개월 2년 집행 유예 구형을 내렸다. 김영휘·임혁근·임종환·장일환 등은 다시 고등 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원심대로 모두 8개월의 구형을 받았고, 임영택·이봉길은 상고를 취하하였다.

[의의와 평가]

전북 민중 운동자 동맹은 민중운동사 사건으로 인하여 단체의 중심 인물들이 대거 피체 당하는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나머지 회원들은 계속 전라북도 지역에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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