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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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郭 |
영어공식명칭 | Fortress Wal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학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삼국 시대 - 토성 및 석축 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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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몽산성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몽산 |
소재지 | 당진읍성 - 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 |
소재지 | 당진 면천읍성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몽산길 14[성상리 1117-2] |
소재지 | 성동산성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
소재지 | 송악산성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중흥리 |
소재지 | 국사봉산성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봉생리 |
소재지 | 신평현성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 |
소재지 | 성상리산성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1086-2 일대 |
소재지 | 당진포진성 -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
소재지 | 퇴미산성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소소리 |
[정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산이나 평지에 세웠던 인위적 건축물.
[개설]
성곽은 고대 외적의 침입을 막아 내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성벽을 말하는데, 보통 안쪽의 것을 성(城) 또는 내성(內城)이라 하고 바깥에 쌓은 성벽을 외성(外城) 또는 곽(郭)이라 한다. 성곽은 지형적인 조건과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여러 모양으로 발달하게 되었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산지가 많아 특히 산성(山城)이 발달하였으며 네모꼴보다는 산세에 따라 포곡선(包谷線)을 형성하였다.
[성곽의 분류]
우리나라의 성곽들은 네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성곽의 형태로 보면 평면의 모양에 따라 네모꼴·둥근꼴·반달꼴·길다란 꼴로 구분할 수 있다. 성곽이 축조된 위치에 따라 평지성·낮은 산성·높은 산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성곽을 축조한 목적과 기능에 따라서는 왕궁과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한 도성(都城), 지방의 행정·경제·군사의 중심지인 읍성(邑城), 유사시에 대비하여 방어용·도피용으로 쌓은 산성, 창고를 보호하기 위한 창성(倉城), 군사적 요충지에 쌓고 군대가 주둔하던 진보(鎭堡), 왕이 행차할 때 일시 머물기 위한 행재성(行在城), 국경과 요새지에 쌓은 행성(行城)[일명 장성(長城)]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축조에 사용된 재료에 따라서 토성·토축 성·석축 성·벽돌 성·목책·목익(木杙)[목책과 달리 가지 부분까지 이용하여 세운 것]·목책 도니성(木柵塗泥城)[목책이나 목익에 진흙을 발라 마치 담장처럼 만든 것] 등이 있다.
[성곽의 구성]
성곽은 성벽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시설을 포함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성곽에는 우선 성벽과 해자(海子)가 있고, 성문(城門)과 여장(女墻), 그리고 타첩(垛堞)·옹성(壅城)·곡성(曲城)·치성(雉城)·성우(城隅)·암문(暗門)·수구문(水口門) 등이 있다.
[당진의 성곽]
당진의 성곽은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규모 있는 산성으로는 몽산성을 들 수 있다. 몽산성은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몽산에 있는데, 전형적인 퇴미식 토성에 자연적인 산세에 따라 석축하여 성을 쌓은 구간이 혼재해 있다. 몽산성은 백제 때의 산성으로 백제 부흥 전쟁 당시 풍왕이 잠시 천도하였던 피성으로 추정된다. 몽산성은 조선 초기까지 면천군의 행정 치소 역할을 하다가 평지성인 면천읍성이 1439년(세종 21)에 완성되어 치소의 기능을 상실한 이후 쇠락하였다.
평지성인 면천읍성과 당진읍성은 고려 말과 조선 초 왜구의 침입이 본격화되면서 피해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문종실록』에는 당진읍성과 면천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당진현읍성(唐津縣邑城)은 주위가 2,809척, 높이가 9척이고, 여장(女墻)의 높이는 2척이며, 적대(敵臺)가 8개소, 문(門)이 3개소에 옹성(擁城)이 있고, 여장이 468개이며, 성 안에 우물이 3개소가 있고, 해자(海子)는 아직 파지 않았다."라고 하였고, "면천군읍성(沔川郡邑城)은 주위가 3,225척에, 높이가 11척이고, 여장의 높이는 3척이며, 적대가 7개소이고, 문이 3개소인데 그중 2개는 옹성이 없고, 여장이 56개이며, 성 안에 우물이 3개소가 있고, 해자는 혹 파기도 하고 혹은 파지 않기도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당진읍성은 원형이 거의 파괴되어 흔적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지만, 면천면 성상리의 당진 면천읍성[충청남도 기념물 제91호]은 성의 일부가 원형 그대로 남아 있고, 최근 남문을 둘러싼 옹성과 성곽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이 밖에 당진에 있는 성곽으로 견훤(甄萱)이 쌓고, 동학 농민 혁명 당시 복구하였다고 전하는 성동산성을 비롯하여 성상리 산성[충청남도 기념물 제162호], 송악면 중흥리에 송악산성(松嶽山城), 정미면 봉생리에 국사봉산성(國師峰山城), 합덕읍 소소리에 퇴미산성(退尾山城), 고대면 당진포리에 당진포진성(唐津浦鎭城)[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5호], 신평면 운정리에 신평현성(新平縣城) 등이 있고, 해안 주변을 방어하던 토성들이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성곽은 대부붅 외형적으로 실체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허물어졌고, 성곽이 존재했었다는 기록과 성터가 확인되는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