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4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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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蒙山城 |
영어공식명칭 | Mongsanseong Fortress |
이칭/별칭 | 몽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학로 |
건립 시기/일시 | 삼국 시대 - 백제 혜군의 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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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439년 - 면천읍성 건설로 면천군 치소 이전 |
소재지 | 몽산성 -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
성격 | 산성 |
지정 면적 | 길이 3,360m[원래의 성은 4㎞ 이상 추정]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몽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삼국 시대 산성.
[개설]
몽산성(夢山城)이 있는 몽산[299m]은 충청남도 당진시의 중남부 면천면 성상리·송학리와 순성면 성북리·백석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몽산성'이라 불리기도 하며, 조선 시대에는 면천군의 진산(鎭山)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면천 조에는 "몽산(夢山)이 군 북쪽 4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 면천 조에도 "몽산이 관아의 북쪽 4리에 있다. 마산(馬山)에서 뻗어 나와 고을의 주산(主山)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몽산성은 돌로 쌓았는데, 주위가 1,314척이다. 안에 2개의 우물이 있는데, 지금은 못쓰게 되었다. 면주(沔州)이던 때에 이곳에 관아가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보아 당시에는 몽산성이 대부분 석축하여 산성의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퇴뫼식 산성]
몽산성은 몽산의 능선을 타고 흙을 다져 쌓은 퇴뫼식 산성이다. 퇴뫼식 산성이란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성곽이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산의 7~8부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되게 한바퀴 둘러 쌓은 산성으로 단기간의 전투에 활용하기 위한 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성을 쌓기 시작한 초기의 형태이며 삼국 중에 특히 백제에 이러한 성곽 축조가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백제의 성곽이 공격보다는 방어에 목적을 두고 축조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변천]
몽산성은 백제 부흥 전쟁 당시 혜군의 치소로 쓰였던 산성이다. 백제 풍왕은 주류성(周留城)이 협소하고 주변에 피난 온 백성들이 먹고 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피성(避城)으로 왕도를 옮기게 된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피지산(避支山) 또는 피성은 서쪽으로 고련단경수가 있어 적의 침입이 어렵고 남쪽으로 벽골의 늪이 있다"고 했다. 고련단경수는 지금의 승전목이고 벽골은 합덕제를 뜻한다. 몽산성이 백제 혜군의 피성이었다는 것은 면천의 옛 지명인 혜성이 ‘피성’과 같은 지명이라는 점에서 분명하다. 혜와 피는 고대 발음으로 같은 음이기 때문이다. 몽산성은 고려 시대까지 면천군의 행정 치소 역할을 하였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왜구의 침략이 빈번했던 고려 말 이후 조선 초에 몽산성을 수리하여 대비하고자 했던 기록이 있다. 1437년(세종 19) 6월 2일 충청도 순무사 안순이 이르기를 "산성이 너무 크고 백성이 적어 지키기가 어렵고 성의 수리는 마치지도 못했는데 백성들은 원치 아니하니 읍성으로 옮겨 쌓게 해 달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면천읍성(沔川邑城)을 새로 세우기로 하여 1439년(세종 21) 몽산성 아래 평지에 면천읍성이 건설되었다. 이로써 면천 고성인 몽산성은 행정 치소의 기능을 잃고 자연스럽게 폐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몽산성의 위치는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다. 면천면사무소 뒤로 몽산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현황]
현재의 몽산성 터는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토축하여 성을 쌓고 그 위에 석축으로 성을 쌓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지형과 토질에 따라 토축으로 쌓은 토성 지대와 돌로 쌓은 석축 성 지대가 명확히 구분된다. 이것은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후대에 석축하여 성을 쌓았다는 뜻이다. 현재 남아 있는 구간은 산 정상부의 석축 성인데 그나마 성벽이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다. 성내 시설로는 동, 서, 남, 북문 터가 보이고 정상부에 세 군데의 망루터가 있으며, 정상부를 중심으로 동쪽은 토성, 서쪽은 석축 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의 길이는 3,360m지만 원래의 성은 4㎞가 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의의와 평가]
몽산성은 오랜 동안 백제 때 '혜군'에서부터 '혜성군'으로 다시 '면천군'으로 행정 지명이 변경되는 가운데 행정 치소로 기능을 하였던 산성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