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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데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09
한자 屍體-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6년 10월 2일연표보기 - 시체데모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46년 10월 2일연표보기 - 시체데모 종결
성격 사회운동

[정의]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9월총파업 중 경찰 발포로 사망한 시민 시체 1구로 대구의과대학, 대구농과대학과 대구사범대학 학생들이 벌인 시위.

[역사적 배경]

대구에서 9월총파업이 벌어지고 있던 1946년 10월 1일 오전 남선전기주식회사에서 파업이 발생하고, 정오 무렵 여성과 어린이를 중심으로 대구부청에서 식량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기아데모(飢餓데모)가 발생하였다. 1946년 10월 1일 오후 1시 무렵 전국노동조합대구평의회 건물에 남조선총파업대구시투쟁위원회 간판이 게시되었고, 1만 5000명의 군중이 경찰의 해산명령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벌였다. 1946년 10월 1일 오후 7시 무렵 대구역 앞에서 운수노조와 운수경찰이 대치하는 가운데 경찰의 발포로 시위 군중 1명이 사망하였다.

[경과]

1946년 10월 2일 대구의과대학에서 최무학을 비롯한 의대생들이 10월 1일 시위 중 사망한 시신이라고 주장하는 시신 1구를 들것에 들고 와 데모를 시작하였다. 이른바 ‘시체데모’의 시작이다. 대구의과대학을 비롯하여 대구사범대학, 대구농과대학 등 3개 대학생이 참가한 가운데 시체데모가 전개되었다.

시체데모대는 ‘경찰은 사죄하라’, ‘발포경찰을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오전 1946년 10월 2일 10시 무렵 대구경찰서에 도착하여 대구의 중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 시체데모를 벌인 학생 대표들은 대구경찰서장 이성옥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경찰의 무장해제를 요구하였다. 1946년 10월 2일 오전 11시 30분 무렵 이성옥 대구경찰서장은 경찰의 무장해제를 명령하였다.

[결과]

시체데모는 1946년 10월 2일 오후 1시쯤 대구경찰서 주변에 나타난 미군 진압부대가 오후 3시 무렵 진압 작전을 펼치면서 해산되었다.

[의의와 평가]

시체데모대구 9월총파업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발생한 사망자의 시신을 이용하여 벌인 시위로 10월항쟁의 직접적 발단이 된 사건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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