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6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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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枝洪 |
영어공식명칭 | Park Jihong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석배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 박지홍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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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6년 1월 - 박지홍 대동권번에서 학예부장으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47년 - 박지홍 조향창극단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953년 2월 - 박지홍 국극사의 「도화선」 음악 담당 |
몰년 시기/일시 | 1958년 8월 26일 - 박지홍 사망 |
출생지 | 나주 - 전라남도 나주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국악인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대동권번 학예부장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국악인.
[개설]
박지홍(朴枝洪)[1884~1958]은 1884년 전라남도 나주의 전통 예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동편제 명창 박기홍이 사촌 형이다. 12세 때 김창환 문하에서 소리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22세부터 3년 동안 원각사에서 활동하였다. 그 후 전국의 여러 권번에서 소리와 춤을 가르쳐 판소리와 전통무 발전에 기여하였다. 「심청가」와 「흥보가」를 잘하였는데, 박초향(朴初香)에게 소리를 가르쳤고, 박동진(朴東鎭)에게 「흥보가」를 가르쳤다.
[활동 사항]
박지홍은 평양, 해주, 개성, 함흥, 경주 등의 권번에서 소리 선생을 하였다. 1929년 46세 때부터 대구 달성권번에서 박귀희 등의 제자를 가르쳤다. 1946년 1월부터 2~3년간 대동권번에서 학예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47년 방호준, 박동진 등과 함께 조향창극단(朝香唱劇團)을 조직하여 순회공연을 하고, 그 후 경북국악원을 창설하여 권명화 등을 가르치며 대구의 전통예술 발전에 초석을 놓았다. 국극사에 참여하여 창극에 출연하였는데, 1949년 2월 1일부터 개최한 부산 국립극장 개관 기념대공연의 「춘향전」, 「심청전」, 「흥보전」에 오태석, 박상근, 박초향, 박후성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53년 2월 2일부터 부산 동아극장에서 상연한 국극사(國劇社)의 「도화선(桃花扇)」의 음악을 담당하였다.
박지홍은 1958년 8월 26일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박지홍류 살풀이는 1995년 5월 12일에 대구광역시 시도무형문화재 살풀이 예능 보유자로 인정된 권명화의 살풀이를 통하여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