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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077
한자 朴基洪
영어공식명칭 Park Gihong
이칭/별칭 가신(歌神),가선(歌仙)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8년연표보기 - 박기홍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25년연표보기 - 박기홍 사망
출생지 전라남도 - 전라남도 나주시
활동지 서울 - 서울특별시
활동지 경상북도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국악인
성별 남성
본관 함양
대표 경력 대구기생조합 소리 선생

[정의]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국악인.

[개설]

박기홍(朴基洪)[1848~1925]은 1848년에 전라남도 나주의 전통 예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함양이다. 이날치, 김창환과 이종 간이다. 아버지 박재형(朴在亨)은 정춘풍의 수행고수였다고 한다. 당시 조선 소리를 끝막다시피 한 동편제의 종장(宗匠)이었으며, 미리 ‘소리 값’을 정하고 소리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다. 박기홍은 ‘가신(歌神)’, ‘가선(歌仙)’으로 칭송받았다.

[활동 사항]

박기홍은 통속화된 소리를 하던 송만갑에게 “장타령이 아니면 염불이다. 명문 후예로 전래 법통을 붕괴한 패려자손(悖戾子孫)이다.”라고 혹평할 만큼 동편제 법제를 고수하였다. 박기홍의 장기는 「춘향가」와 「적벽가」이고, 특히 「적벽가」의 ‘삼고초려’, ‘장판교대전’, ‘화용도’에 신출귀몰하였다. 「조조 군사 사향가」가 박기홍의 더늠이다. 정악(正樂)에도 뛰어났고, 거문고, 가야금, 피리, 젓대 등에도 두루 능하였다.

박기홍은 서울에서 흥선대원군의 각별한 후원을 받으며 활동하였다. 당시 흥선대원군박기홍에게 오수경(烏水鏡)과 무과 선달(武科先達)의 직계를 하사하였다.

박기홍은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의 도리사(桃李寺) 부근에 머물며 박록주를 가르쳤다. 그 후 달성권번의 전신인 대구기생조합에서 소리 선생을 하였다. 박기홍은 1925년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이해조(李海朝)[1869~1927]의 「옥중화(獄中花)」박기홍의 「춘향가」를 바탕으로 정리한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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