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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821
한자 淸道車山農樂
이칭/별칭 차산농악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석대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0년 12월 30일연표보기 - 청도차산농악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도차산농악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재지정
놀이 장소 청도차산농악 - 경상북도 청도군
주관 단체 차산농악보존회 -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 422지도보기
성격 민속놀이
관련 의례 행사 동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에서 전승되는 풍물놀이.

[개설]

청도차산농악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의 여러 마을 사이에 벌어진 천왕기(天王旗) 싸움에서 발전한 농악 놀이 중 하나이다. 상쇠 김오동을 통해 전수되면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차산농악전수관과 차산농악보존회를 통해 전수 및 관리되고 있다.

[연원]

경상북도 풍각면 여러 마을이 풍각 장터에서 행하던 천왕기 싸움을 발판으로 발전된 농악이다. 경상도 남부 지역의 모의 농사굿의 대표적인 형태로 경상도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알려진 농악 놀이이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차산리에도 천왕기 싸움이 있었다. 천왕기는 청도군 풍각면 일원을 중심으로 전해졌고, 마을에서 소유하고 있는 기(旗)이다. 원래는 마을 당제(堂祭)를 올리기 전 ‘신 내림’을 위해 사용되던 깃발로, 놀이에 사용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농악은 대부분의 마을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졌던 놀이이지만 상쇠의 계보에 따라서 전수 또는 중단의 길을 겪게 된다. 차산농악의 경우 상쇠 김오동을 통해 전수되었으며, 이후 전수 보유자를 양성했지만 작고하면서 중단 위기에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전국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 나가면서 영남 대학교 민속 보존 연구회와 인연을 맺고 10명의 상쇠 후보자를 배출하였으며, 1984년에는 풍각면의 풍각 농고 농악반을 만들어 그 계보를 이어 갔다. 이후 차산농악보존회가 설립되고, 차산농악전수관이 설립되면서 상쇠의 계보를 이어 나가고 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청도차산농악 에 사용되는 놀이 도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천왕기이다. 차산리의 천왕기는 대한 제국 말 고종 황제 때 만들어진 것이다.

천왕기는 깃대와 깃포, 오색 수건, 헝겊 그리고 꿩 털로 구성되어 있다. 깃대는 길이 11m, 둘레 20㎝ 가량 되는 청죽(靑竹)이고, 윗부분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대나무의 마디 수는 38마디인데 각 마디의 길이는 보통 30∼40㎝ 정도이다. 깃폭은 가로 210㎝, 세로 140㎝의 천이다. 오색 수건은 모두 8개가 있으며, 빨강, 파랑, 노랑 등 주로 원색으로 만들어진 6개의 헝겊으로 구성되어 있다. 꿩 털은 암컷과 수컷의 구별 없이 깃털을 뽑아 사용하고, 기의 끝 부분에 단다.

청도차산농악 은 상쇠들이 사용하는 꽹과리와 북, 징, 장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놀이는 대부분 마을의 가장 넓은 장소에서 행해졌지만 차산농악전수관 건립 이후 이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놀이 방법]

청도차산농악 의 기본적인 편성은 천왕기[서낭기], 나팔재비, 고동재비, 상쇠 1, 중쇠 1, 설징 1, 종징 1, 끝징 2, 설북 1, 종북 1∼4, 끝북 2, 설장구 2, 종장구 1∼4, 끝장구, 설법고 1, 종법고 1∼4, 끝법고, 색시, 양반, 포수 등으로 되어 있다.

연행 순서는 굿거리굿[춤굿]에서 시작하여 부정굿[차츰걸음], 연풍기굿[호호딱딱], 자진모리굿[막조우기], 물레굿[미엉잦기], 진굿[2석, 3석, 4석], 농사굿[논서르기, 씨뿌리기], 모내기굿[줄서기], 김매기굿[논매기], 타작굿[밭들기], 조름쇠[굿, 판굿], 오방굿[뚤뚤말기]으로 마무리 된다.

놀이의 편성은 약 50여 명으로 구성되는데, 각 25명으로 구성된 두 농악대가 먼저 세납, 나팔, 천왕기, 농기를 세우고 삼 열 종대로 나간다. 이후 자진모리장단으로 바꿔 상쇠가 지휘하면 관중에게 인사를 하고, 이때 천왕기와 농기 그리고 세납과 나팔 등이 전면에 일렬로 서고 나머지는 상쇠의 지휘를 받게 된다.

먼저 굿거리굿은 아직 흥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양반이 너울너울 느리게 춤을 추는 것으로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점잖게 춤을 추는 춤굿이다. 이때 상쇠를 중심으로 한 4명의 쇠는 원의 중앙에 우물 정(井)자로 서서 대원을 지휘하게 된다.

이어서 부정굿은 세마치장단으로 이루어진다. 상쇠가 쇠를 꺾게 되면 두 개의 동심원을 만들게 되는데, 이는 굿거리굿에서 쫓아내지 못한 잡귀를 마저 쫓아내기 위함이다.

연풍기굿 대열은 부정굿과 같이 두 개의 동심원이지만 부정굿에서 잡신을 쫓아냈기 때문에 기분 좋게 훨훨 뛰면서 상쇠를 따라 돈다.

자진모리굿은 아주 좋은 기분으로 쇠를 치는 과정으로 하나의 원을 만들어 농악의 흥을 돋우게 된다.

물레굿은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실을 뽑는 물레를 상징하는 것이다. 상쇠가 쇠를 꺾으면 2명이 한 조가 되어 돌고, 이어 3명이 한 조가 되어 돌고, 4명이 한 조가 되어 돈다.

진굿은 옷을 해 입고 일하러 갈 때 열을 지어 가는 과정을 형용한 것이다. 농사굿은 농사짓는 형상을 하는 것으로 주로 상쇠의 지휘를 받아 상모가 하게 된다. 모내기굿은 차산농악에 삽입된 것이다. 김매기굿과 타작굿을 통해 여러 가지 농사에 대한 형용은 끝을 맺고, 판굿과 오방굿 등이 행해진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청도차산농악 은 주로 정월 대보름에 한 해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동제를 올릴 때 행해졌던 놀이이다. 동제 과정에서 잡신을 물리치고 신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특히 천왕기를 모시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정확한 시작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차산리를 비롯한 풍각면 일대 대부분의 마을에서 행해졌던 대표적 정월 대보름 놀이 중 하나였다.

[현황]

청도차산농악 은 1957년 ‘부산 전국 농악 경연 대회’에서 김오동이 개인상을 수상했고, 1979년 12월 ‘제20회 전국 민속 예술 경연 대회’ 농악 부문에서 문화 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1980년 12월 30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첫 번째 예능 보유자는 김오동[1922∼2002]이었다. 김오동풍각면 차산리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꽹과리 등 농악기 다루는 솜씨가 뛰어 났으며, 그의 형 김시동으로부터 쇠가락을 전수 받았다. 또한 박용희[남자, 북], 백용만[남자, 북], 최정덕[남자, 징] 등도 농악대는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김오동 사망 이후 후보자 박영수[1937∼2004]가 보유자로 승계하였으나, 2004년 사망해서 현재 보유자와 후보자 없이 50여 명의 회원들이 차산농악보존회[회장 김상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무형문화재 전수 교육 조교 김태훈[1968년생, 남자, 상쇠], 백진환[1968년생, 남자, 상쇠], 조일환[1969년생, 남자, 북], 박준오[1969년생, 남자, 상쇠], 변은경[1970년생, 여자, 장구] 등이 주축이 되어 차산농악을 전승하고 있지만 예능 보유자는 없다.

2012년 현재 차산농악전수관에서 30여 명이 차산농악을 전수받기 위해 연습 중이다. 매년 9월에 차산농악 정기 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2012년 차산농악 정기 발표회는 9월 15일 풍각면사무소에서 개최되었다. 이외 청도군의 각종 축제에 초청되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참고문헌]
  • 김택규·김경배·석대권, 『영남 농악』-영남 편(수서원, 1997)
  • 청도 차산 농악(http://www.chasanf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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