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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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珣遺墟碑 |
이칭/별칭 | 경재 곽 선생 유허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 484-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인표 |
건립 시기/일시 | 1828년 - 곽순 유허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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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곽순 유허비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 484-1 |
성격 | 비석 |
양식 | 비석 |
관련 인물 | 곽순 |
재질 | 화강암 |
소유자 | 현풍 곽씨 |
관리자 | 현풍 곽씨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개설]
을사사화 때 장살당한 경재 곽순의 자취를 알리고, 추모하는 비석으로 1828(순조 28)년에 건립되었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 운곡 정사와 원모재 옆에 있으며, 최근에 신축한 기와를 이은 팔작지붕을 한 단칸 비각 안에 있다.
곽순(郭珣)[1502∼1545]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이 현풍이며, 자는 백유(白瑜), 호는 경재(警齋)이다. 중종 23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 박사, 진보 현감, 기주관, 서천 군수, 호조 좌랑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기묘사화로 희생된 조광조의 신원을 상소하였다. 명종이 즉위하여 외척인 윤원형 등이 횡포를 부리자 벼슬을 버리고 운문산에 들어갔으나, 을사사화가 일어나면서 장살 당하였다. 1568년 다시 벼슬이 내려졌고, 영천의 송곡 서원과 청도의 우연 서원에 제향되었다.
[건립 경위]
일반적으로 유허비는 어떤 인물의 자취를 알리고, 추모하는 비석이다. 경재 곽순의 유허비도 을사사화 때 희생된 경재 곽순의 지조와 절개의 자취를 알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1828(순조 28)년에 청도 사람들이 건립하였다.
[위치]
운문면 순지리에 있으며, 곽순 유허비 옆에 운곡 정사와 원모재가 있다. 운문면사무소에서 국가 지원 지방도 69호선을 따라 순지리 방향으로 가면 도로변에 운문호를 앞에 둔 까치산이 나온다. 유허비는 까치산과 도로가 접하는 운곡 정사와 원모재 옆에 있다. 운문호 쪽으로는 운문댐 상수원 관리 사무소가 있다.
[형태]
경재 곽순의 유허비는 최근에 신축한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의 단칸 비각 안에 있다. 비석은 비 갓 없이 호패 모양의 비 몸체와 귀부를 갖춘 비석이다. 귀부는 머리 부분만 조각을 하였고, 나머지는 간단하게 표현하였다.
[금석문]
비 몸체의 앞면에 ‘경재 곽 선생 유허비(警齋郭先生遺墟碑)’를 세로로 새기고, 글자에 붉은 색 칠을 하였다. 뒷면에는 ‘숭정후사무자구월일입(崇禎後四戊子九月日立)’라고 비석 건립 연대를 새겼다.
[현황]
최근에 건축된 비각 내에 있고, 표지판이 있다. 현풍 곽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어서 보존 상태가 좋다. 비문도 모든 글자를 판독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지조와 절개를 지킨 사람에 대한 청도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