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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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珣 |
이칭/별칭 | 백유,경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출생 시기/일시 | 1502년 - 곽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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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28년 - 곽순 식년 문과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43년 - 곽순 성균관 사예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545년 - 곽순 홍문관 교리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545년 - 곽순 을사사화 때 처형당함 |
추모 시기/일시 | 1568년 - 곽순 관직이 환수됨 |
거주|이주지 | 곽순 이주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
사당|배향지 | 송곡 서원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 |
사당|배향지 | 우연 서원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당호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현풍 |
대표 관직|경력 | 교리 |
[정의]
조선 전기 청도 운문산에서 은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백유(伯瑜), 호는 경재(警齋). 아버지는 사재감 첨정 곽수녕(郭遂寧)이고, 어머니는 김철단(金哲端)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곽효원(郭孝元), 증조할아버지는 곽성기(郭成己)이다. 부인은 정언수(鄭彦脩)의 딸이다.
[활동 사항]
곽순(郭珣)[1502∼1545]은 1524년(중종 19) 사마시에 합격하고, 1528년(중종 23) 27세에 식년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 박사·호조 좌랑·형조 좌랑·진보 현감(眞寶縣監)·춘추관 기주관(記注官) 등을 거쳐, 1543년에 사예(司藝)가 되었다. 이듬해 장령으로서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조광조의 신원을 상소하였다.
1545년 명종이 즉위한 후에는 홍문관 교리로서 경연의 시독관을 겸했고, 봉상시 정·사간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교리로 재직한 초기에 어진 사람을 골라 세워야 한다는 택현설(擇賢說) 때문에 곤욕을 겪었다.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소윤과 대윤간의 세력 투쟁이 심해지더니 소윤 윤원형(尹元衡)의 횡포가 심하게 되자 관직을 포기하고 청도 운문산에 입산하였으나 을사사화 때 장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1568년(선조 1)에 관직이 환수되었고, 영천(永川) 송곡 서원(松谷書院)과 청도 우연 서원(愚淵書院)에 제향되었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에 유허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