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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423
한자 己卯士禍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519년 - 기묘사화 발생
성격 사화
관련 인물/단체 조광조|김대유|박하담|박하징|홍경주|남곤

[정의]

1519년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류가 훈구 세력에 의해 화를 입은 사건.

[개설]

중종반정(中宗反正)[1506]으로 새로 등용된 기호 사림파가 급격한 개혁 정치를 시도하다가 1519년(중종 14)[기묘년] 11월에 남곤(南袞)·심정(沈貞)·홍경주(洪景舟) 등의 훈구파 재상들에 의해 화를 입은 사건이다.

[경과]

중종반정으로 새로 등용된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신진 사림들은 파괴된 유교적 정치 질서를 회복하고, 대의명분과 오륜을 존중하는 성리학의 장려에 힘썼다. 또한 중국 하·은·주의 왕도 정치를 이상으로 하는, 이른바 지치주의(至治主義) 정치를 실현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현량과(賢良科) 설치, 소격서(昭格署) 폐지, 향약(鄕約) 실시 등과 함께 반정 공신(反正功臣) 위훈 삭제(僞勳削除)를 계기로 훈구 세력을 압박하였다. 이에 홍경주·남곤·심정 등이 밀의하여, 조광조 일파가 붕당을 지어 나라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사림파를 제거하였다.

[결과]

기묘사화 조광조는 능주로 귀양 가서 사사되고, 김정(金淨)·기준(奇遵)·한충(韓忠)·김식(金湜) 등도 유배 중에 사형 또는 자결하였다. 그밖에 김구(金絿)·박세희(朴世熹)·박훈(朴薰)·홍언필(洪彦弼)·이비(李秕)·유인숙(柳仁淑) 등 수십 명이 귀양 가고, 이들을 두둔한 안당(安瑭)김안국(金安國)·김정국(金正國) 형제 등도 파직되었다.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알려진 청도 출신 선비 김대유(金大有)기묘사화 이후 운문산에 은거하고, 향유 박하담(朴河淡), 박하징(朴河澄) 형제도 은둔 처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특히 박하담, 박하징 형제는 사림파 등용에 적극적이던 안당과는 가까운 인척임에도 중앙 정계 진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성수침(成守琛)·이연경(李延慶)·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조식(曺植) 등과 교류를 넓히면서 처사형 학자로 살아갔다.

[의의와 평가]

기묘사화 는 훈구파와 신진 사류 간의 반목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당시 정치 체제가 왕도 정치 실현을 뒷받침해 줄 만큼 성숙하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사화이다. 이후 성리학이 학문적으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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