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명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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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전라북도 군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운동. 3·1운동 당시 군산에서는 영명 학교 학생들의 교사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에 이어서 시내 각지에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1919년 3월 30일 제1차 만세 운동 관련자들의 공판을 앞두고 군산과 옥구 군중의 야간 시위는 상당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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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군산시에서 활동 중인 그리스도교 분파. 한국이 개신교를 접하게 된 연대는 선교의 목적으로 입국하기 전인 162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에 왔던 최초의 개신교 신자는 1627년에 온 벨테브레(Jane Janes Weltvree)와 1653년에 온 하멜(Hendrich Hamel)이었다. 한국에 선교 목적으로 입국한 최초의 선교사는 독일 포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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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군산시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기관. 조선 시대에는 옥구 향교, 임피 향교, 서원 등에서 군산의 중, 고등 교육을 담당하였다. 근대기 신식 학제가 수립되면서 신 문물의 중심지였던 군산에도 새로운 학교들이 설립되었다. 군산의 중등 교육은 1903년 설립된 영명 학교에서 출발하였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중등 교육이 확산되어 2014년 7월 1일 현재 12개의 고등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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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고석주는 1919년 3월 5일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독립 만세 시위에 가담하여 거사준비를 하고 영명학교 학생과 개정 병원 직원과 합세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며 활동했다. 고석주는 1903년 하와이로 이주하여 한인 단체인 자강회, 협성회, 국민회 활동을 통해 민족 의식 고취와 독립을 위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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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군산시에 있는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군산 지역은 비옥한 평야와 더불어 항구를 끼고 있어 유사 이래 신문물과 지식에 개방적이고 교육열이 강한 곳이었다. 변화에 대처하며 발달하려는 유연성과 적극성에 기반하여 군산 개항 이후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민회나 단체 활동을 전개하고 신식학교들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일제에 의하여 식민지 교육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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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운동의 일환으로 1919년 3월 23일 군산공립보통학교를 불태운 사건. 군산은 신지식과 문물이 발달한 곳이면서도 동시에 일제 침략의 교두보였으므로 1919년 3·1 운동이 호남 지역에서 가장 먼저 발생하였다. 1919년 3월 5일 영명 학교 학생들이 주동이 된 독립 만세 운동이 있은 후 군산 공립 보통학교의 학생들도 만세 운동 시위를 계획하였다. 군산공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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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군산시 신흥동과 해망동, 금동 일원에 걸쳐 조성된 근린공원. 월명 공원은 각국 공원 또는 군산 공원이라고도 불린다. 금강 하구를 바라보며, 장계산과 월명산이 감싸고 있는 산기슭에 조성되어 있다. 전망대·산책로·어린이 놀이터·꽃동산 등의 공원 시설을 비롯해 개항탑·수시탑(守市塔)·의용비 등이 세워져 있으며, 그 밖에 흥천사와 측후소가 있다. 공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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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군산시 나운동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소속의 교회. 군산지곡교회는 궁멀 교회[현 구암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한 고형일의 집을 기도 처소로 사용하다 1907년에 창립되었는데 1960년 5월에 지곡 교회와 남성 교회로 분립되었다. 결국 현재는 전라북도 군산시 의료원로 99-8에 위치한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군산 남성 교회[담임 김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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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해방 이전까지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교육. 군산은 개항 도시로서 신지식과 문물이 교류하는 중심지역으로서 인근 지역보다 근대 교육의 중심지였다. 국권의 위기 속에서, 일제는 문명의 시해를 앞세워 식민지 교육 체제를 정비해가려 하였으나 군산 지역에는 민족의 인재를 양성하려는 지식인들과 새로운 교육을 받으려는 인재들이 모여들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학교들이 설립되어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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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김성은은 군산의 만세운동의 준비와 1919년 3월 5일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원래 군산의 만세운동은 군산 장날인 3월 6일로 계획하고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준비를 갖추었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서 주요 지도자들이 연행되자 학생, 예수교 신자, 부근 주민 등 500여명이 태극기를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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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김수남은 1919년 3월에 일어난 군산 공립 보통 학교 방화 시위를 주동하였다. 1919년 3월 5일 영명 학교[현 군산 제일 중·고등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독립 만세 운동이 있은 뒤에 군산 공립 보통 학교 학생들도 비밀리에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이 거사의 중심 인물은 군산 공립 보통 학교 학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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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김수영은 1919년 3월 5일 영명 학교[현 군산 제일 중·고등학교]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위한 독립 선언문 등2,000 여매를 제작하여 각 교회 등에게 배포하고 주민을 규합하여 만세 시위를 준비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수영은 1919년 당시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현 전라북도 군산시 구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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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제의 무력 탄압으로부터 벗어나 민족 독립을 위해 전라북도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민족 운동. 군산은 금강과 서해안에 인접한 지리적 환경과 김제·만경·정읍 등의 호남 평야 지대를 끼고 있어 일찍부터 미곡을 중심으로 한 각종 산물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군산항이 개항된 이후부터 이러한 환경은 일제의 수탈과 침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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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 출신으로 민족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활동한 운동가. 독립운동을 실천해 나가는 방법으로는 무장 투쟁·실력 양성·외교 독립론이 있었고, 정세의 변화에 따라 독립 전쟁·의열 투쟁·3·1 운동·노동·농민·학생·문화·형평 운동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에서도 전국적인 독립운동 흐름에 동참하면서 지역 문제와 연관되어 노동·농민·학생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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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5일 전라북도 옥구[현 전라북도 군산시]의 예수 병원 사무원으로 재직중 군산 장날인 3월 6일을 기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 수천매를 복사하며 준비하였다가 일본 경찰의 탐지로 동지들이 연행되자, 학생, 예수교 신도, 인근 주민 등 500여 명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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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 야구(野球)가 처음 소개된 시기는 1910년(융희 4) 경술국치(庚戌国恥) 이전으로 추정된다. 미국 선교사들이 1894년(고종 31) 봄 호남 최초로 선교를 시작한 지역이라는 점과 전위렴[W. M. Junkin] 선교사가 지금의 구암 동산에 1899년(광무 3)에 세운 구암 교회, 1903년(광무 7)에 세운 영명 학교의 설립 연도 등이 추정을 가능케 한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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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광무 7) 2월 군산시 구암동에 전위렴 목사가 설립한 교육 기관. 1903년(광무 7) 2월 미국 예수교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전위렴[Junckin,W.M]이 구암동에 설립하였다. 1904년 소학교와 중학교를 분리하여 중학교를 영명학교라고 칭하게 되었다. 1909년 특별과와 고등과를 병설하고 군산 영명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1919년 3월 5일 영명학교의 교사와 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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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5일 유복섭은 전라북도 옥구[현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영명 학교에 재학중 학생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군산 장날인 3월 6일을 기해 독립 만세 운동을 펴기로 계획하였으나 사전에일본 경찰에 발각되었다. 유복섭은 만세 운동을 계획한 동료들이 연행되자 학생 예수교 신자 부근 주민 등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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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6일 군산 독립 만세 시위를 모의하고 독립 선언문을 제작하고 배포하며 시위 운동을 전개했다. 유희순은 1919년 3월 5일 김병수·박연세·이두열 등이 주동이 되어 전개한 군산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때의 만세 시위는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이갑성으로부터 2백여매의 독립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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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이수현은 1918년 2월 조선 국민회(朝鮮國民會) 운동과 관련하여 평양 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수현은 1913년 전라북도 군산의 영명 학교[현 군산 제일 중·고등학교] 재학 당시부터 애국심과 독립 정신의 함양에 진력하였다. 평양 사람 장일환(張日煥)이 1914년 하와이로 건너가 당시 그곳에 주재중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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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이재근은 1919년 당시 구암리 병원의 사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재근은 1919년 3월 5일 영명 학교 학생들과 같이 옥구군 개정면에서 군중들을 규합하여 군산부(群山府) 경찰서 앞까지 행진하며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5일 전라북도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현 전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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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융희 4)부터 1945년까지 전라북도 군산·옥구 지역의 역사. 조일 수호 조규(朝日修好條規) 이후 한국에 대한 침략을 가시화한 일제는 러일 전쟁을 통해 한국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고 이어 을사 늑약을 체결 후 통감부를 설치하였다. 이후 일제는 한국 군대 해산, 사법권 장악을 통해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를 진행하였다. 의병에 대한 강제 진압을 완료하고 1910년(융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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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5일 일어난 군산에서의 독립 만세 시위 운동에 참가하였다. 군산의 만세운동은 군산 장날인 3월 6일로 계획하고 영명 학교(永明學校)[현 군산 제일 중·고등학교] 기숙사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준비하였는데 사전에 군산경찰서 무장 경찰관 수십명이 출동하여 주도자인 박연세(朴淵世), 이두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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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활동한 선교사. 전킨(W.M.Junkin)은 1896년 군창(群蒼)역[군산 포구] 부근 자신의 집에서 전도한 교인들과 예배를 갖고 군산 지역에 개신 교회를 최초로 시작하였다. 전킨(W.M.Junkin)은 1865년 12월 10일 미국 버지나아 주(州) 크리스천벅에서 판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1892년 6월 메리 레이번(Jun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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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군산시에 있는 중등 보통 교육 기관. 조선 시대에는 옥구 향교, 임피 향교, 서원 등에서 군산의 중, 고등 교육을 담당하였다. 근대기 신식학제가 수립되면서 신 문물의 중심지였던 군산에도 새로운 학교들이 설립되었다. 군산의 중등교육은 1903년 설립된 영명 학교에서 출발하였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중등교육이 확산되어 2014년 7월 1일 현재 19개의 중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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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두 팀이 각각 11명씩 한 팀을 이루어 발과 머리 등 손과 팔을 제외한 신체를 사용해 공을 다루는 경기. 군산의 축구는 서양 선교사 전킨(W. M. Junkin)[전위렴]이 1902년 지금의 구암산에 설립한 영명 학교에서 시작되었다. 1902년 사랑방 교육으로 출발한 영명 학교는 1903년 소학교를 설립하고, 1909년 미국에서 의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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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홍종억은 1919년 3월 군산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홍종억은 1919년 3월 5일 전라북도 군산(群山)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예수 교회 부속 영명 학교(永明學校)[현 군산 제일 중·고등학교] 교사 이두열(李斗悅), 예수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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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옛 옥구] 출신 독립운동가. 홍천경은 1919년 3월 5일 전북 옥구에서 영명 학교 재학중 교사 이두열, 김수영 등이 주도한 군산 장날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복사하는 한편, 고준상 등 동료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군중을 선도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징역 6월의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홍천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