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1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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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寧越嚴氏 始祖 嚴忠臣 |
영어공식명칭 | Loyalist Eom, the Founder of Yeongwol Eom Cla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남기택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0년 1월 26일 - 「영월엄씨 시조 엄충신」 손정님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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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7년 6월 28일 - 「영월엄씨 시조 엄충신」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7-22에 수록 |
관련 지명 | 영월군 - 강원도 영월군 |
채록지 | 위만리 -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위만리 |
성격 | 설화|인물 유래 |
주요 등장 인물 | 단종|엄충신 |
모티프 유형 | 충군과 절개 |
[정의]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영월엄씨 엄흥도에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영월엄씨 시조 엄충신」은 영월엄씨(寧越嚴氏)의 선조인 엄충신(嚴忠臣)[엄흥도(嚴興道)]에 관한 이야기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위만리에서 관련 이야기가 채록되었다는 점에서 광포설화의 양상을 지닌다.
[채록/수집 상황]
「영월엄씨 시조 엄충신」은 2017년 간행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7-22에 수록되어 있다. 2010년 1월 26일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위만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손정님[여, 90세]에게 채록한 것이다.
[내용]
「영월엄씨 시조 엄충신」은 영월엄씨 선조 엄충신과 관련된 이야기로서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삼촌이 조카를 죽이려고 몇 번을 시도하였으나 삼촌이 보낸 사람들은 오는 도중에 매번 죽었다. 무고한 죽음들을 지켜보던 조카는 어느 눈 오는 겨울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은 조카의 시신은 아무도 거두지 않았다. 그러자 엄씨 집안 사람이 시신을 수습하였다. 엄씨는 시신을 업고 가던 중 노루 한 마리를 만났다. 엄씨가 시체를 지고 가니까 노루가 길을 피하였다. 시신을 잘 묻어 준 엄씨는 이후 가족을 데리고 도망쳤다. 엄씨의 후손은 지금도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위만리에 살고 있다.
「영월엄씨 시조 엄충신」에서 엄충신은 엄흥도이다. 엄흥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충신이고, 본관은 영월이다. 엄흥도가 강원도 영월 호장(戶長)으로 있을 때 단종(端宗)[1441~1457]은 세조(世祖)[1417~1468]에 의하여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고, 영월에 안치된 후 시해되었다. 세조의 명을 받은 금부도사에 의하여 단종이 사사된 것이다.
영월에서 단종이 세조에 의하여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사람들은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단종의 시신을 돌보지 않았다. 그러나 엄흥도는 관을 비롯한 장례 기구 일체를 혼자서 마련하여 정중하게 장사를 치렀다. 그 후 벼슬을 내놓고 아들을 데리고 숨어 살다가 여생을 마쳤다. 이후 현종(顯宗)[1641~1674] 때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건의로 엄흥도의 자손이 등용되었고, 영조(英祖)[1694~1776] 때 엄흥도의 충성심을 기념하는 정문이 세워졌고 공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모티프 분석]
「영월엄씨 시조 엄충신」의 주요 모티프는 ‘임금을 향한 충성과 절개’로서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이다. 목숨을 걸고 유교적 덕목을 지키는 충신의 이야기를 통하여 교훈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