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1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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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端宗- 寧越 嚴氏 |
영어공식명칭 | Danjong and Yeongwol Eom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남기택 |
[정의]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영월 엄씨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단종과 영월 엄씨」는 영월 엄씨(寧越嚴氏)가 단종(端宗)[1441~1457]의 묘소를 마련하였다는 이야기인데, 경기도 파주시에서 관련 이야기가 채록되었다는 점에서 광포설화의 양상을 지닌다.
[채록/수집 상황]
「단종과 영월 엄씨」는 2015년에 간행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1-12에 수록되어 있다. 2010년 3월 27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봉수길[남, 80세]에게 채록한 것이다.
[내용]
단종은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왕위를 빼앗겨 강원도 영월에 유배된다. 수양대군은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어 있을 때 열다섯 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단종의 충신들은 유배지에만 다녀오면 죽고 말았다. 몇 년이 지나도록 이런 비극적 상황이 계속되었다. 단종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자기 때문에 죄도 없이 선량한 사람들이 계속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단종은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되고, 궁노를 시켜 개를 구하여 오라고 명하였다. 단종은 개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의 아래위를 가로지르는 나무 밑에 구멍을 뚫고 명주 줄을 밖으로 내보냈다. 밖에 있던 궁노는 명에 따라 명주 줄을 힘껏 당기었다. 그렇게 단종이 죽자 궁노 역시 살 수가 없어 자신도 약을 먹고 따라서 죽었다.
유배지는 외딴곳이라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었다. 영월 엄씨는 원래 천한 신분이었다. 엄씨는 ‘나도 한번 양반이나 되어 보아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밤길에 단종의 거처로 올라갔다. 올라가서 보니 단종과 궁노가 죽어 있는데 누구도 수습하는 사람이 없었다. 엄씨는 단종의 목에 감긴 명주 줄을 풀고 옷을 깨끗이 가다듬은 후 시신을 업고 내려왔다. 엄씨가 단종의 시체를 업고 가던 중 노루를 만났다. 당시는 겨울이라 눈이 많이 쌓여 있었는데, 노루가 펄쩍 뛰는 곳만 눈이 녹아 있었다. 엄씨는 바로 그 자리를 파서 단종의 시신을 묻어 주었다. 궁노는 미처 묏자리를 쓰지 못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7년이 지났다. 전국 방방곡곡에 방이 붙기를 ‘단종 임금님을 어디에 묻었는지 아는 사람은 상금을 준다’는 것이었다. 엄씨는 곧바로 관리를 찾아가서 관련 사실을 고하였다.
“그렇게 하여서 소인이 묻은 예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 본 적이 있느냐?”
“못 갔습니다.”
“그럼 풀이 많이 났겠지?”
“소인이 가랑잎을 많이 덮어서 그렇게 많이는 안 났을 것입니다.”
나라에서는 엄씨를 데리고 가 해당 장소를 확인하였다. 손으로 처리한 결과였지만 잘 묻어 놓은 상태였다. 이어 지관을 써서 그 자리에 단종 왕릉을 앉히게 되었다. 그런 이후에 엄씨에게는 삼품(三品) 벼슬을 주었다. 그렇게 엄씨는 양반이 되었다. 상민 신분이었던 엄씨가 이 일을 통하여 양반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모티프 분석]
「단종과 영월 엄씨」의 주요 모티프는 ‘단종의 죽음’으로서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이다. 영월 엄씨는 인지상정으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였고, 그 대가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었다. 유교적 덕목을 전하는 교훈적 이야기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