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534 |
---|---|
한자 | 梧峰宗宅 |
이칭/별칭 | 오봉 사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길 90[구미리 2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612년 - 오봉종택 건립 |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5월 13일 - 오봉종택 내 오봉 사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4년 3월 11일 - 의성:오봉종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7호로 확대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오봉종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오봉종택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 251 |
성격 | 고택 |
양식 | 맞배지붕(좌), 팔작지붕(우)[사랑채]|팔작지붕[안채]|맞배지붕[오봉 사당]|팔작지붕[낙선당] |
정면 칸수 | 5칸[사랑채]|5칸[안채]|3칸[오봉 사당]|4칸[낙선당] |
측면 칸수 | 2칸[사랑채]|2칸[안채]|1칸[오봉 사당]|1칸[낙선당] |
소유자 | 신병철(申炳哲) |
관리자 | 신병철(申炳哲)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리에 있는 아주 신씨 오봉공파의 종택 건물.
[개설]
오봉종택(梧峰宗宅)은 조선 시대의 문신인 신지제(申之梯)[1562~1624]를 파조로 삼고 있는 아주 신씨(鵝洲 申氏) 오봉공파(梧峰公派)의 종택이다. 살림집인 오봉종택, 서당인 낙선당(樂善堂), 사당인 오봉 사당(梧峰祠堂) 등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1987년 5월 13일에 오봉 사당만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7호로 지정되었으나, 오봉종택·낙선당·오봉 사당 모두가 종택의 구성 요소임이 감안되어 2004년 3월 11일 지정 명칭을 오봉종택으로 변경하고, 지정 내용을 사당 1동에서 종택 일곽[6동]으로 변경하였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오봉종택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구미길 90[구미리 251]에 있다. 구미 삼거리에서 의성 소방서 방향으로 130m가량 이동하면 오른 편 큰 바위에 ‘구미리’ 표지석과 함께 ‘오봉종택’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석이 안내하는 1차선 도로를 따라 300m가량 이동하면 구미 경로당이 나오고, 그 뒤쪽으로 오봉종택이 자리하고 있다.
구미리는 아주 신씨 오봉공파의 세거지이다. 신지제의 후손인 신정주(申鼎周)[1764~1827)]가 1812년(순조 12) 저술한 동지(洞誌)인 『구장지(龜莊誌)』에 의하면 마을 앞산의 모양이 거북의 형상과 비슷하여 구호(龜湖)라고 하였다가, 산의 모양이 거북의 등과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다시 구미(龜尾)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한다.
[변천]
구미리에 정착한 아주 신씨 오봉공파의 입향조는 신지제이다. 신지제는 1612년(광해군 4) 7월 종제 신지문(申之門)과 함께 구미 마을에 정착하였고 이때부터 오봉종택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오봉 사당의 경우 신지제가 사망한 1625년(인조 3)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될 뿐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낙선당은 신지제의 아들 신홍망(申弘望)[1600~1673]이 강학(講學)을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다. 1691년(숙종 17) 세워졌으나, 1740년(영조 16) 화재로 소실되어, 1752년(영조 28) 재건되었다.
세월이 흘러 건물이 퇴락하여 1971년 후손 신정기(申正基)의 주창으로 중수(重修)되었으나, 원형과는 다르다고 한다. 한편, 6·25 전쟁 당시 낙선당을 비롯한 오봉종택 건물들은 북한군의 병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형태]
오봉종택은 낙선당과 종택이 좌우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두 건물 사이 뒤쪽 언덕 위에 오봉 사당이 정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낙선당은 전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각지붕 건물이다. 종택은 전체적으로 ㅁ자형 배치 형태를 취한다.
우측 담장 사이에 난 서향한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 마당을 사이에 두고 ㄱ자형의 사랑채가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전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좌측은 맞배, 우측은 팔작지붕 건물이다. 사랑채 가운데 설치한 중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一자형의 안채가 역시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홑처마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이밖에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아래채가 있다. 낙선당과 종택 뒤쪽에는 오봉 사당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사당 안쪽에는 신지제 불천위를 비롯한 위패들이 봉안되어 있다.
[현황]
오봉종택에는 과거 신지제가 암행어사 정장(正裝) 때 쓰던 대형 갓, 갓집, 칼, 『오봉문집(梧峰文集)』, 목판(木板), 고인(古印), 지팡이, 제기(祭器), 가상서(加賞書), 선조 때의 팔도지도(八道地圖) 등이 소장되어 있었으나 2012년 현재 한국 국학 진흥원에 위탁해 놓은 상태이다.
오봉종택은 후손인 신병철(申炳哲)이 소유·관리하고 있으나, 종택 건물은 비워 놓은 상태이다. 다만 종손을 비롯한 문중 사람들이 수시로 둘러보며 관리하고 있다. 문중에서 불천위 제사를 오봉종택에서 행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오봉 사당은 익공계 건물 중 흔치 않은 가묘형 건물(家廟形建物)이고, 원형의 손상도 적어 문화재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