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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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윤윤희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350년(충정왕 2) - 김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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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00년대 - 김완 출생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715년(숙종 41) - 김원 출생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740년(영조 16) - 김유복 출생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430년(세종 12) - 김휴 사망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00년대 - 김완 사망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777년(정조 1) - 김원 사망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815년(순조 15) - 김유복 사망 |
입향 시기/일시 | 14세기 후반~15세기 초반 - 김휴 입향 |
입향 시기/일시 | 15세기 - 김완 |
입향 시기/일시 | 18세기 후반 - 김유복 |
입향 시기/일시 | 18세기 후반 - 김덕신 |
분관|분종 시기/일시 | 14세기 후반 - 전서공파 김성목 |
분관|분종 시기/일시 | 14세기 후반 - 안원공파 김사렴 |
본관 | 안동김씨 본관 - 경상북도 안동시 |
입향지 | 안동김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소정면 운당리|연동면 내판리 |
세거|집성지 | 안동김씨 집성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 |전의면 달전리|소정면 운당리|연동면 내판리 |
묘소|세장지 | 김휴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학당마을 |
묘소|세장지 | 김휴 유허비와 안동김씨 학당재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
묘소|세장지 | 안동김씨 쌍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 |
묘소|세장지 | 효자 김백열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 |
성씨 시조 | 김숙승 |
입향 시조 | 김휴|김완|김원|김유복 |
[정의]
김숙승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을 중시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金方慶)[1212~1300]을 중시조로 하는 안동김씨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소정면 운당리, 연동면 내판리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현재 전서공파(典書公派),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익원군파(翼元公派) 후손들이 세종특별자치시 전 지역에 넓게 흩어져 살고 있다.
[연원]
안동김씨는 김숙승을 시조로 하는 구(舊) 안동김씨와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신(新) 안동김씨로 나뉜다. 세종특별자치시에 거주하는 안동김씨는 대부분 구 안동김씨 후손들이다.
시조 김숙승은 신라 경순왕의 손자로, 고려 때 공부시랑(工部侍郎)과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중시조 김방경은 감찰어사(監察御使)와 형부상서(刑部尙書)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삼별초 토벌과 일본 원정에 참여한 뛰어난 장수이다. 이후 김방경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 또는 손자의 손자] 대에 이르러 21개 파로 분파되었으며, 그중 15개 파가 세계(世系)[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전동면 미곡리 입향조는 김휴(金休)[1350~?]로,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에게 수학하고 검교근시(檢校近侍)를 지냈다. 중시조 김방경의 현손이며, 전서공파 파조인 김성목(金成牧)의 아들이다. 김휴는 선대부터 개경에 살았는데 고려가 망하자 절의를 지키기 위하여 아버지와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에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김휴의 후손들은 전의면 양곡리와 달전리 등 이웃 마을에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소정면 운당리 입향조 김완(金浣)은 진천현감(鎭川縣監)을 지냈다. 안렴사공파로 안원군파(安原君派)의 파조인 김공량(金公亮)[1472~1544]의 아들이다. 아버지 김공량이 운당리 일대를 사패지(賜牌地)[고려와 조선시대에 임금이 내려 준 논밭]로 하사 받자 세거하던 경기도 여주를 떠나 소정면 운당리로 옮겨 왔다.
연동면 내판리에는 안동김씨 안렴사공파와 익원공파 후손들이 비슷한 시기와 연유로 입향한다. 익원공파 김원(金員)[1715~1777]은 청주시 강내면에 살다가 동진평야가 있는 내판리에 부농의 꿈을 안고 정착하였다. 또한 안렴사공파 김유복(金有復)[1740~1815]도 처가인 내판리가 당시 동진평야가 펼쳐진 풍족한 마을이어서 이거(移居)하였다 한다.
[현황]
1871년 『호서읍지』에는 전의현 안동김씨를 원거성씨(元居姓氏)로 기록하고 있다. 연동면 내판리의 안동김씨는 일제강점기 때 발행한 『조선의 성』에는 74가구가 거주하는 동족마을로 보고하고 있다.
안동김씨는 1988년 내판리에는 94가구, 1997년 양곡리에는 35가구, 달전리에는 25가구가 거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의 안동김씨는 1985년에 519가구 2,066명, 2000년에 520가구 1,534명이다.
[관련 유적]
전동면 미곡리에는 1819년(순조 19)에 건립된 김휴의 유허비와 안동김씨 재실(齋室)인 학당재(學堂齋)가 있다. 마을 뒷산에는 김휴의 할아버지 김구(金玖), 아버지 김성목, 김휴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미곡리의 학당(學堂)이라는 마을 이름은 김휴의 호인 학당을 따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전의면 양곡리에는 김익정(金益精)[?~1436]과 김익정의 현손 김사준(金師俊)[1439~1520]의 효행을 기리는 안동김씨 쌍효 정려가 있다. 안동김씨 쌍효 정려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연동면 내판리에는 김백열(金百悅)[1816~1868]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 김백열 정려가 있다. 효자 김백열 정려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