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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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岐平院 |
영어공식명칭 | Gipyeongw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정민 |
관할 지역 | 기평원 -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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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대 승려나 불교 신도들이 요로(要路)에서 가난한 여행자와 병든 사람들에게 숙식과 약품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 또한 원은 교통상의 요지만이 아니라 깊은 산속이나 험한 길가에도 설치되었으며, 이는 교통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빈민을 구제하는 역할을 위한 것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조선 시대 원은 전국적으로 1,310개가 있었다. 전라도에는 245개가 있었으며, 무주에는 무제원(茂梯院)과 함께 승장원(勝長院), 소이원(召爾院) 3개 외에 유등원(柳等源), 기평원(岐平院)이 행정 구역 개편 등에 따라 폐지되거나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평원(岐平院)은 무주 경계 30리에 위치하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기평원은 지금의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 가정 마을에 있었다. 본래 조선 시대까지 충청남도 금산군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주군 부남면으로 편입되었다. 기존의 가정자(柯亭子)와 평당(平堂)이 같은 행정 구역으로 들어오면서 가정자의 ‘가’ 자와 평당의 ‘당’ 자를 합하여 가당리로 편제되었다. 이에 따라 가당리에 있던 기평원이 무주군으로 들어왔다. 기평원은 옛 부리현(富利縣)[금산군의 옛 지명]을 지나 제원역(濟原驛)으로 연결되었다.
[의의와 평가]
기평원은 무주군과 충청남도 금산군을 연결한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역의 중심 교통로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