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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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驛院 |
영어공식명칭 | Inn for Government Officials or Missionarie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정민 |
[정의]
고려 시대~조선 시대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교통로에 설치된 교통·통신·숙박 시설.
[개설]
전통 시대에 역원(驛院)은 원활한 교통과 통신, 여행자를 위한 휴식과 숙식, 이동 수단의 교체와 수리, 정비를 위한 시설로 활용되었다. 그 가운데 역(驛)은 전령(傳令), 사신 영송(使臣迎送)과 같은 공적 업무를 위해 파견되는 관리들의 여행을 위해 관에서 운영하던 기관이었다. 역을 이용하는 관리는 마패(馬牌)를 사용하여 말[馬]을 이용하였으며, 이때 마패에는 필요한 말의 수와 날짜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원(院)은 이들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함께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이라고 칭하였다.
이러한 역원 제도의 기원은 신라 시대인 487년(소지왕 9) 사방에 우역(郵驛)을 설치한 데에서 시작한다. 고려 시대에는 전국의 도로를 대, 중, 소로 나누고, 병부(兵部)에 소속된 역승(驛丞), 역장(驛長), 역정(驛丁)을 두어 운영하면서 역마(驛馬)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고려의 제도에 더해 1457년(세조 3)에 역승을 찰방(察訪)으로 고치고, 전국에 537개 역을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원의 경우에는 고려 시대 승려나 불교 신도들이 요로(要路)에서 가난한 여행자와 병든 사람들에게 숙식과 약품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원위전(院位田)을 통해 원을 운영하였다.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는 제원 찰방(濟原察訪)에 속하였던 소천역(所川驛)을 중심으로 무제원(茂梯院), 소이원(召爾院), 승장원(勝長院), 유등원(柳等院), 기평원(岐平院)이 있었다.
[역]
고려 시대에는 전국 22역도(驛道) 525역이 운영되었다. 이 중 전라도에는 전주(全州)를 중심으로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공주(公州)를 연결하는 전공주도(全公州道) 21개 역, 나주(羅州)를 중심으로 전라남도 일대와 남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승라주도(昇羅州道) 30개 역, 전주에서 진안(鎭安)을 거쳐 경상남도 거창(居昌), 협천(陜川)을 지나 진주(晉州)를 중심으로 남해 중부 해안을 연결하는 산남도(山南道) 28개 역, 남원(南原)을 중심으로 임실(任實), 구례(求禮), 곡성(谷城), 순천(順天)을 연결하는 남원도(南原道) 12개 역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군현제(郡縣制)의 대폭적인 개편과 함께 전국 41도 537역으로 정리되었으며, 후기에 다소 변화가 있었으나 큰 차이는 없었다. 이 시기 역로 행정(驛路行政)은 중앙의 병조(兵曹) 관할이었으며, 승여사(乘輿司) 이하 전국의 각 역에 찰방, 역승이 교통 행정을 담당하였다. 『대전회통(大典會通)』과 『문헌비고(文獻備考)』를 보면, 전라 좌도에는 6도 6찰방이 있었는데, 삼례도(參禮道) 13개 역, 제원도(濟原道) 5개 역, 오수도(獒樹道) 12개 역, 청암도(靑巖道) 12개 역, 경양도(景陽道) 7개 역, 벽사도(碧沙道) 10개 역이 그것이다.
무주 지역의 소천역은 금산군(錦山郡)에 소재한 제원 찰방의 속역(屬驛)으로, 찰방도(察訪道)인 금산(錦山)의 제원(濟原), 용담(龍潭)의 달계(達溪), 진안의 단령(丹嶺), 고산(高山)의 옥포(玉包)과 함께 제원도에 속하였다. 이곳에서 출발한 파발(擺撥)은 제원역(濟原驛)을 거쳐 경천역(敬天驛), 증암역(增岩驛), 성환역(成歡驛), 청호역(菁好驛)을 통해 서울역으로 들어간다.
[원]
조선 시대에 원은 대개 11.78㎞[30리]에 하나씩 두었으나, 지형에 따라 원의 간격이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원은 원이 소재한 도로의 대소에 따라 지급되는 원위전(院位田)을 통해 운영되었다. 그러나 원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서 16세기를 전후하여 공무 여행자의 숙식을 각 고을의 객사(客舍) 또는 역에서 담당하거나 민간 업자가 위탁받아 대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원은 전국적으로 1,310개소가 있었다. 이 중 전라도에 245개소가 설치되었으며, 초기에는 무주 지역에 3개소가 있었으나 행정 구역 개편 등으로 폐지되거나 추가적으로 설치되었다.
1. 무제원
무제원은 현재의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원촌 마을에 위치하였다. 경상도와 인접하여 동으로는 지례(知禮)의 두의곡역(頭衣谷驛)과 통하고, 남쪽으로는 거창의 성초역(省草驛)과 통하여 삼남 대로(三南大路)로 불렸다. 서쪽으로는 설천의 소천역과 기곡의 승장원으로 연결되며 이곳을 통과하면 무주읍에 닿는다.
2. 소이원
소이원은 현재의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서면 마을에 위치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현(縣)의 서쪽 14리[5.5㎞]에 있는데, 망풍루(望風樓)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영조(英祖) 대에 편찬된 『무주부 읍지(茂朱府邑誌)』나 『적성지(赤城誌)』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 어느 시점에서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소이원은 소이진(召爾津)이 위치한 곳으로, 서쪽의 기평원을 지나 제원 찰방역과 금산으로 연결된다.
3. 승장원
승장원은 현재의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 위치하였는데, 무주 관아(茂朱官衙)와 무풍원과의 중간 거리에 있었다.
4. 기평원
금산군에 속하였던 기평원은 무주 경계 11.78㎞에 있는 현재의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 가정 마을에 위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주군으로 편입되었으며, 기평원은 제원 찰방역과 연결된다.
5. 유등원
유등원은 현재의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 고방 마을에 위치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기록이 없으나, 영조 때 편찬된 『무주부 읍지』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 상유 마을에 조선 후기 학행과 덕행을 겸비하였던 문화 유씨(文化柳氏) 일가가 세거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무주 지방의 명문가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문사(文士)와 묵객(墨客)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으며, 무주 관아에 공무를 보러 온 관료들의 왕래가 잦았다. 이들에게 숙식 등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치된 것이 유등원이었다. 유등원은 북쪽의 소이원과 연결되어 금산과 무주로 통하였다.
[현황]
2017년 현재 역원은 교통수단의 발전, 행정 구역의 개편 등으로 찾아볼 수 없으나, 지명에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소천역이 있었던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는 본래 지명이 '삼촌(三村)'이었으나, 제원 찰방에 속하였던 소천역이 있던 곳이라 하여 '소천' 또는 '역말[역촌(驛村)]'로 불리웠다고 한다. 또한 무제원이 있던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원촌 마을은 '원 앞' 혹은 '원촌(院村)' 등으로 불려 오다가 1972년에 '원평(院坪)'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