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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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聖煥妻金氏-姜鎭璜妻鄭氏孝行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Gang Seonghwan's Wife Gim Clan and Gang Jinhwang's wife Jeong Clan |
이칭/별칭 | 통정공숙부인 김해 김씨 기적비(通政公淑夫人 金海金氏 紀蹟碑),효부 하동 정씨 기적비(孝婦 河東鄭氏 紀蹟碑)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길찬 |
건립 시기/일시 | 192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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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 |
성격 | 효열비 |
관련 인물 | 강진황(姜鎭璜)|강위선(姜渭善)|김해 김씨(金海金氏)|하동 정씨(河東鄭氏)|강수환(姜燧桓)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25㎝[높이]|42㎝[너비]|17㎝[두께] |
소유자 | 진양 강씨 문중 |
관리자 | 진양 강씨 문중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해 김씨와 하동 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강성환(姜聖煥)의 처 김해 김씨는 남편이 병들어 백방으로 애썼지만 효험이 없자 입으로 종기를 빨아 치료하였다. 그 뒤 맹인이 되어 23년을 앞을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동 정씨는 김해 김씨의 아들 강진황(姜鎭璜)의 처이다. 시어머니가 맹인이 되자 언제나 시어머니와 한 몸이 되어 의식 기거를 극진히 받들어 모셨다. 시어머니가 위중할 때에는 변을 맛보며 모셨고, 돌아가시게 되어서는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입에 넣어 드리는 효를 행하였다.
김해 김씨 기적비(金海金氏紀蹟碑)는 아들 강진황이 어머니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하동 정씨 기적비(河東鄭氏紀蹟碑)는 아들 강위선(姜渭善)이 어머니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21년에 세웠다.
[위치]
강성환 처 김씨 및 강진황 처 정씨 효행비는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 사막마을에 있다.
[형태]
비역(碑域)은 시멘트 담으로 둘러져 있다. 두 비 모두 비좌(碑座)에 비신(碑身), 가첨석(加檐石)[지붕돌]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25㎝, 너비 42㎝, 두께 17㎝이다.
[금석문]
김해 김씨 기적비는 두전(頭篆)[비석 앞면 머리 부분] 자리에 행서로 ‘통정공 숙부인 김해 김씨 기적비(通政公淑夫人金海金氏紀蹟碑)’라 두르고, 비석 앞면에 진양 강씨(晉陽姜氏) 강수환(姜燧桓)이 쓴 비문을 음각하였다. 하동 정씨 기적비는 비석의 앞면 가운데에 ‘효부 하동 정씨 기적비(孝婦河東鄭氏紀蹟碑)’라 적고, 비석 앞면 우측에서부터 비문을 음각하였다. 비문은 마찬가지로 강수환이 지었다.
[현황]
비석은 진양 강씨 문중에서 관리하며, 하동군청 문화관광과의 비지정 문화재 시설 사업에 따라 고전면에서 정비를 맡아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이 한 울타리 안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