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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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永完頌德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for Yi Yeongwa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192-6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연가 |
건립 시기/일시 | 1985년 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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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920년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192-6 |
성격 | 송덕비 |
관련 인물 | 이영완(李永完)|오도식(吳道植)|김일보(金一補) |
재질 | 화강암[받침]|흑요암[비신]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26㎝[높이]|45㎝[너비]|21㎝[두께] |
소유자 | 고하마을 |
관리자 | 고하마을 이장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는 이영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이영완(李永完)은 본관이 금구(金溝)이다. 1920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서 태어나 11세 때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양복 기술자로 사회 활동을 시작하였다. 30세 때 직물 공장을 설립하였고, 33세 때 동신기업주식회사를 창업하여 수출에 힘써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되어 1983년 대통령 산업훈장을 받았다.
[건립 경위]
이영완이 고향 마을에 노인정과 마을 회관을 건립하는 등 지역 개발 사업에 물심양면으로 힘쓴 데 대해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이영완 송덕비를 세웠다. 비문은 고향 동문 학우 오도식(吳道植)이 짓고, 대한노인회 하동군지부장 김일보(金一補)가 썼다.
[위치]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192-6번지 고하마을 어귀 진입로 변에 있다. 비석 앞 도로는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서 양보면 운암리로 가는 군도 17호선이며, 약 100m 앞에는 지방도 1003호선이 지난다. 비석 정면 200m 앞에 옛 고하초등학교가 있고, 지방도 1003호선을 따라 서편으로 3㎞ 지점에 고전초등학교와 고전면사무소가 있다.
[형태]
비는 주변 268×268㎝의 사각형 콘크리트 바닥에 가로 81㎝, 세로 49㎝, 높이 25㎝의 화강암 받침을 놓고, 그 위에 규형(圭形)의 흑요암(黑曜岩) 비신(碑身)을 세웠다. 비신은 높이 126㎝, 너비 45㎝, 두께 21㎝이며, 상단에 용무늬를 새긴 용두석(龍頭石)을 얹었다. 용두석의 크기는 정면 가로 82㎝, 세로 47㎝, 두께 40㎝이다. 비석 주변은 높이 65㎝의 철주 보호책을 사방에 둘렀다.
[금석문]
비석의 정면에 ‘해암 금구 이영완 송덕비(海岩金溝李永完頌德碑)’라 새겼는데, 글자의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10㎝이다. 비신의 양 옆면과 뒷면에 국한문 혼용으로 이영완의 출신 배경과 활약상, 고향 마을에 기여한 공적을 새겼는데 글자의 크기는 가로, 세로 각각 3㎝이다. 비문의 끝 부분에 ‘서기 1985년 을축 일월 이십 일 동향동문학우 춘당 오도식 찬,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하동군지부장 김일보 서, 하동군 고전면 고하동민 일동 수(西紀 1985년 乙丑 一月 二十日 同鄕同門學友 春堂 吳道植 撰, 社團法人 大韓 老人會 河東郡支部長 金一補 書, 河東郡 古田面 古河洞民 一同 竪)’라 새겼다.
[현황]
이영완 송덕비는 마을 주민들이 정성으로 관리하여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향토 출신으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애향심으로 지역 개발에 헌신적으로 힘쓴 인물을 현창하고, 본보기로 남겨 후세에 귀감으로 삼으려 비를 세운 주민들의 정성이 깃든 귀중한 문화 유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