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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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大燮 |
영어음역 | Gwon Daeseop |
이칭/별칭 | 낙현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숙향 |
출생 시기/일시 | 1896년 2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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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9일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8일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1월 20일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1월 20일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낙현, 아버지는 만은 권계주이고, 동생은 역시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권대형(權大衡)이다.
[활동사항]
권대섭(權大燮)은 1895년(고종 32)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4일 문암 장터 1차 독립만세 의거에서 동생 권대형이 일본 경찰에 구속되었다. 이에 권대섭은 다음 장날인 3월 29일 2차 의거를 궁항리에 사는 정남시(鄭南時)와 치밀하게 계획하여, 청암면[현 옥종면] 농민 300여 명을 이끌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월횡을 지나 문암 장터까지 시위행진을 하였다. 24일의 시위 사건에 자극을 받아 경계를 펴고 있던 일본 경찰은 총검으로 군중을 난타하여 강압으로 해산시키고 주동자를 체포, 연행하였다. 권대섭과 정남시는 진주로 압송되어 1919년 4월 2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다 1919년 11월 20일에 출옥하였다. 「신분장지문조회서」 기록이 있으나 정부 포상이 보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