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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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守直 |
영어음역 | Gim Sujik |
이칭/별칭 | 겸지(兼之)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길찬 |
출생 시기/일시 | 179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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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879년 |
추모 시기/일시 | 1884년 |
추모 시기/일시 | 1893년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
비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아정마을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용궁 |
[정의]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겸지(兼之).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김수직(金守直)은 1794년(정조 18)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순후하고 효성스러워서 어려서부터 고기나 과일이 생기면 반드시 부모님께 먼저 드렸다. 어른이 되어서는 농사를 지어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여름에는 생선을 차갑게 보관하였다가 요리해서 올렸으며, 겨울에는 미음과 죽을 따뜻이 끓여서 상에 올렸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겨드랑이에 종창이 생겼는데, 의원이 종창의 깊이를 재겠다고 막대기를 넣었다가 중간에 부러졌다. 김수직이 10여 일을 입으로 종기를 빨아 막대기를 빼내었고, 이윽고 종기도 낫게 하였다. 어머니가 10년을 학질로 병석에 누워 있을 때는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살려 냈다. 부모의 상에 아침저녁으로 성묘하기를 춥거나 덥거나,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하루도 그만두지 않았다.
[상훈과 추모]
1879년(고종 16)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증직되고, 1884년(고종 21)에 정려되었다. 1893년(고종 30)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아정마을에 석조 정려각을 세웠는데, 이인명(李寅命)이 비문을 지었다.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규모인데, 얕은 기단석 위에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웠다. 비석의 몸돌은 규형으로 화강암이며 팔각지붕의 비석 덮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