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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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金氏 |
영어의미역 | Gwangsan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용국 |
입향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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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 화촌마을 |
성씨 시조 | 김흥광 |
입향 시조 | 김장|김광 |
[정의]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장·김광 형제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연원]
광산 김씨는 광주 김씨(光州金氏)로 불리기도 하지만 지금은 광산 김씨로 통일하였다고 한다. 광산은 오늘날 광주시 광산구에 해당한다.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의 왕자였는데, 장차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예견하고 무진주 서일동[현재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동]으로 피하여 학문을 닦으며 살았다고 전한다. 이후 후손들이 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무진주[광산]를 본관으로 하였던 것이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 시기에 광산 김씨 김장(金章)·김광(金光) 형제가 경상북도 안동에서 하동 양보면으로 이거하여 정착함으로써, 후손들에 의하여 세거지와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광산 김씨 대종회’에 따르면 크게 양간공파(良簡公派)·문정공파(文貞公派)·문숙공파(文肅公派)·낭장동정공파(郎將同正公派)·사온직장공파(司溫直長公派)로 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동 지방에 정착하게 되는 계파는 14세손 양간공(良簡公) 김연(金璉)[1215~1292]의 증손대에 이르러 다시 분파한 김광리·김영리·김성리·김안리·김천리 다섯 파 중에 둘째 김영리[판군기감사공파]와 다섯째 김천리[밀직부사공파]의 후손이다.
[입향 경위]
임진왜란 이후 각 씨족들이 각지로 분산하는 경우가 흔했다. 광산 김씨 가운데 안동 지역에 거주하던 통정대부 김장·김광 형제도 임진왜란 후 안동에서 하동군 양보면으로 이거(移居)하였다고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광산 김씨가 하동의 세족(世族)으로 나오는 것으로 볼 때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상당히 번성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통계청의 성씨와 본관 자료에 의하면 2000년 전국의 광산 김씨는 25만 8,936가구 모두 83만 7008명이며, 하동에 거주하는 광주 김씨가 244가구 644명이다. 하동 지역 광산 김씨의 세거지는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 화촌마을이다.
[관련 유적]
추모재(追慕齋)는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 화촌마을 광산 김씨 입향조를 비롯한 선조들을 시향하는 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