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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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The Hill Split like a Split Stick of Rice Cake |
이칭/별칭 | 「떡국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
집필자 | 한양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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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
채록지 |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
성격 | 전설|풍수담|고개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부자|도사 |
모티프 유형 | 떡국 잘라지듯 잘라지는 산세라는 도사의 예언|네 번이나 잘려 나간 떡국재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에서 떡국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떡국 가래 갈라지듯 갈라진 고개」는 어느 도사의 예언에 따라 재가 떡국 갈라지듯 갈라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노모의 묘를 옮겼는데, 그 자리에 신작로가 생겨 재가 잘렸다는 풍수담이자 고개 유래담이다. 이를 「떡국재」라 일컫기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적량면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적량면지』에 실려 있다. 또한 2004년 하동군 각지에서 채록·수집한 설화 자료를 중심으로 하동향토사연구위원회가 집필하여 2005년 하동문화원에서 발행한 『하동의 구전설화』의 205쪽에도 「떡국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떡국 가래 갈라지듯 갈라진 고개」는 적량면 조사위원 박용규가 현지에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떡국재’는 적량면과 고전면의 경계 지점이며, 적량 고석에서 고전 사막(沙幕)으로 넘어가는 재 이름이다. 정안봉(正晏峰) 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게가 새까맣게 내려 온다하여 붙인 계해산(蟿蟹山)이 있고, 그 줄기의 끝자락이 횡천강(橫川江)과 접하고 있다. 이곳은 묘를 써도 좌를 볼 필요가 없고 풍수를 부를 필요도 없다는 명지(名地)라고 한다.
옛날 고석의 한 부자가 노모의 병환이 위중하여 이곳에다 묘를 쓰기 위해 하인들을 시켜 터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한 도사가 이 재를 넘어가면서 산세를 보고 하는 말이 “이 재는 떡국 가래 잘라지듯 잘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하인들은 주인에게 이야기하고, 그 부자는 다른 곳으로 묘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때 신작로를 내면서 재 밑바닥이 잘리고, 다시 도로를 직선화하면서 신작로의 그 위가 잘리고, 다시 확장하면서 그 위가 또다시 잘렸으며, 수로가 나면서 잘려 지금까지 네 번이나 떡국 가래 자르듯 잘려 나갔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다 공동묘지를 조성하여 지금까지도 이용하고 있다. 도사가 예언한 후부터 이 재를 떡국재라고 불렀으며, 도로가 난 지금은 재가 없어졌으나 그 지역을 부를 때는 아직도 떡국재라 부르고 있다.
[모티프 분석]
「떡국 가래 갈라지듯 갈라진 고개」의 주요 모티프는 ‘떡국 잘라지듯 잘라지는 산세라는 도사의 예언’, ‘네 번이나 잘려 나간 떡국재’ 등이다. 풍수담은 땅과 물과 바람, 산의 기운에 따라 사람의 운이 잘 되게도 하고 못되게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지형에 묘를 쓰는가, 집을 짓는가 하는 문제로 많은 풍수담이 전승되고 있다. 「떡국 가래 갈라지듯 갈라진 고개」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유래담, 지세와 관련된 풍수담으로 한 도사의 예언에 따라 재가 떡국 갈라지듯 갈라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노모의 묘를 옮겼는데 그 자리에 신작로가 생겨 재가 잘렸다는 것이다. 풍수를 보는 사람들은 주로 유명한 지관이나 스님, 도사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도사가 말한 풍수를 그대로 믿고 따랐기에 부모의 묘가 파헤쳐지는 것을 막았다.
정자(程子)는 묘지를 구하는데 다섯 가지의 걱정을 면할 곳이면 된다고 하였다. 첫째로 도로가 나지 않을 곳, 둘째로 성곽을 쌓을 자리가 아닐 곳, 셋째로 못이 파일 자리가 아닐 곳, 넷째로 권력자에게 뺏기지 않을 곳, 마지막으로 논밭을 개간하지 않을 곳 등이다. 이처럼 묘가 파헤쳐지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겨 왔기에 도사의 말을 따른 고석의 부자는 노모의 묘가 파헤쳐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