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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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籠- |
영어의미역 | The Tale of Nongbawi Rock |
이칭/별칭 | 「구국무기를 비장한 농바위」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양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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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 |
채록지 |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 |
성격 | 전설|암석유래담 |
주요 등장 인물 | 우국장군 |
모티프 유형 | 농바위에 무기와 갑옷과 투구를 감추어 둔 우국장군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에서 농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농바위 이야기」는 하동군 횡천면 횡천역 근처에 있는 농바위에 조선 시대 우국장군이 죽으면서 후일 훌륭한 장수가 나타나 바위를 열어 구국 제민할 것이라며 무기를 감추어 두었다는 암석유래담이다. 이를 「구국무기(救國武器)를 비장한 농바위」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2003년 횡천면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횡천면지』에 실려 있다. 또한 2004년 하동군 각지에서 채록·수집한 설화 자료를 중심으로 하동향토사연구위원회가 집필하여 2005년 하동문화원에서 발행한 『하동의 구전설화』의 370~373쪽에 「구국무기를 비장한 농바위」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농바위 이야기」는 횡천면 조사위원 박현기와 이병문이 현지에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횡천역에서 동북편으로 100m 정도 산비탈을 오르면 마치 안방의 장롱같이 다듬어진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농바위’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 바위 속에는 깊숙한 사연이 비장되어 있다.
조선 시대 어느 우국장군이 있었는데 그가 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으면서 남긴 말이 “뒷날 외적이 침입하여 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을 대비하여 내가 무기를 감추어 두었으니 그때 나라를 구할 장수가 나타나 이 바위를 열고 무기를 끄집어내어 구국제민(救國濟民)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장군이 큰 바위를 장롱처럼 다듬어서 그 속에다 무기와 갑옷과 투구를 감추어 두었다고 한 말이 사람들의 귀에서 지워지지 않고 전해지고 있다.
이 전설을 확인하기 위하여 광복 직후 다섯 명의 장정들이 바위 뚜껑을 열려고 벼르다가 갑자기 검은 구름이 휘몰리고 뇌성벽력을 쳐서 시도를 중단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 농바위는 횡계마을과 개인마을 사이의 새터담 비탈에 지금도 어마어마한 위용으로 앉아 있다.
[모티프 분석]
「농바위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농바위에 무기와 갑옷과 투구를 감추어 둔 우국장군’이다. 나라를 구할 장수를 바라는 마음은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온 「아기장수 전설」에서 드러난다. 아기장수가 바위 속에서 군사를 길러 나라를 구하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다. 특히 임진왜란을 겪었던 백성들은 나라를 구할 장수에 대한 바람이 컸기에 아기장수 유형의 이야기들이 전국에서 구전되어 왔다.
「농바위 이야기」 또한 바위 속에 감추어진 무기를 꺼낼 장수가 나타난다고 하는 바람이 깃들어 있는 전설이다. 조선 시대의 우국장군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무기를 감추어 두었으며, 무기와 갑옷과 투구가 들어 있는 바위를 여는 장수가 나타날 것을 예언한다. 장롱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바위의 위용에서 ‘농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그 바위에 대한 전설이 구전되어 왔다. 「농바위 이야기」에는 전쟁의 비극을 극복하려는 민중의 바람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