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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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The Young Buddhist Monk on a Wooden Horse Who Humiliated the Magistrat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
집필자 | 한양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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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
성격 | 전설|신앙담|신이담 |
주요 등장 인물 | 하동 원님|스님|애기중 |
모티프 유형 | 나무말을 타고 동헌을 돈 문수보살의 현신인 애기중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칠불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나무말 타고 원님코를 납작하게 한 애기중」은 문수동자가 보이지는 않지만 상주하고 있다는 칠불사에 전해 오는 전설로서, 불교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하동 원님이 스님들을 시험했으나 문수보살이 현신한 애기중이 나무말을 타고 동헌을 돌아서 원님을 망신시켰다는 신이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4년 하동군 각지에서 채록·수집한 설화 자료를 중심으로 하동향토사연구위원회가 집필하여 2005년 하동문화원에서 발행한 『하동의 구전설화』의 107~110쪽에 실려 있다. 「나무말 타고 원님코를 납작하게 한 애기중」은 화개면 조사위원 이승재[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900번지]가 현지에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어느 날 하동 원님이 칠불사에 왔다. 그 원님은 유자(儒者)로서 불교나 스님들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항상 중들은 일을 안 하면서 놀고먹고, 사는 집은 그 고을에서 제일 크고 좋은 집[절]에서 사는데 그것도 가장 경치가 좋은 곳, 즉 명당에 사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다.
원님은 주지 스님을 불렀다. “너희들 평생 하는 짓들이 먹고 자지 않으면 공부요, 도를 통하려는 것이 아니냐? 너희 무리 중에 그 도라는 것을 통했거나 훌륭한 공부를 이룬 자도 있을 터 아니겠느냐? 그러니 나와 내기를 하자꾸나. 이번 보름날 오시(午時)까지 하동 관아로 너희 무리를 이끌고 와서 나무말을 타고 동헌 마당을 세 바퀴 돌도록 하라. 너희가 돌면 내가 너희들의 공부와 노력 등을 인정해 주리라.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럴 리야 없겠지만 사교에 빠져서 부모를 버렸으니 불효의 죄요, 힘써 일하지 않으면서 좋은 집에서 재물을 소비하며 호의호식하니 이 또한 나라에 죄를 짓는 것이니 죄를 엄히 물으리라. 너희가 보름날 관아에서 나무말을 타고 마당을 돌지 못하면 절을 비우고…….”
이런 내기는 스님들이 이겨도 원님은 무엇 하나 손해되는 것이 없고 스님이나 절은 무엇 하나 득이 되거나 바뀌는 것이 없지만 원님의 일방적이고 불공평한 요구를 이행하지 못할 때에는 모든 것을 잃어야만 되는 것이다. 사부 대중이 모여 대책 회의를 하여 꾀를 짜내 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결론은 보름날이 되기까지 모두가 부처님께 일심으로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보름날 아침 일찍 고승부터 행자들까지 모두 하동 관아로 갔다. 관아의 마당에는 큰 나무말을 만들어 세워 놓고 있었다. 원님은 말을 타길 재촉했다. 스님들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안절부절못하였다. 이때 줄 끝에서 장난을 치고 있던 애기중이 원님 앞에 나서며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애기 스님은 나무말에 올라타더니 나무말 엉덩이를 철썩 때리며 “이놈아! 빨리 가자 큰스님 걱정 하신다!”고 하니 정말로 나무말이 마당을 돌기 시작하였다. 원님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하고, 큰스님은 부처님을 부르며 경찬해마지 않았다. 애기 스님은 마당을 세 바퀴 돌더니 하늘로 솟구쳐 원님을 한 바퀴 돌고는 “스님들! 아무 걱정 마십시오. 돌아가셔서 공부 열심히 하세요.” 하면서 서쪽 하늘로 날아갔다.
스님들과 원님과 그곳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은 나무말을 탄 애기 스님이 서쪽 하늘에서 사라질 때가지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이 애기 스님은 문수동자가 현신한 것이라 한다. 지금도 칠불사에는 문수동자가 보이지는 않지만 상주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모티프 분석]
「나무말 타고 원님코를 납작하게 한 애기중」의 주요 모티프는 ‘나무말을 타고 동헌을 돈 문수보살의 현신인 애기중’이다. 불교와 유교의 갈등은 고려 말과 조선 초부터 시작하여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한 유교 정책이 펼쳐지던 조선 중기까지 지속된다. 유교 정책을 펼치던 관리의 입장에서는 “항상 중들은 일을 안 하면서 놀고먹고, 사는 집은 그 고을에서 제일 크고 좋은 집[절]에서 사는데 그것도 가장 경치가 좋은 곳, 즉 명당에 사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다.”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절은 하나의 권력이었고 부패한 곳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활빈당을 만들어 해인사를 급습하는 것은 당연히 그만큼 당대에 부패한 곳이 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중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댈 바 없는 사람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부처님 전에 빌어 극락왕생을 얻는 것이다. 칠불사라는 전통 깊은 사찰에서 스님이 수행한답시고 놀고먹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백성이 기댈 곳은 관가가 아니라 사원이며, 원님이 아니라 스님인 것이다.
「나무말 타고 원님코를 납작하게 한 애기중」에서는 원님이 제시한 조건에서 불리한 자는 스님들이다. 스님들은 원님의 요구대로 나무말을 타고 동헌을 세 바퀴 돌면 그대로 절을 유지하는 것이고,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절을 비워야 할 판이니 이겨도 얻는 것이 없다. 이런 공평하지 못한 조건 관계에서 스님들은 약자이다. 민중은 상대적으로 약자의 편을 드는 이야기를 전승시켜 왔다. 만약 스님과 일반 백성의 관계에서 스님이 횡포를 부린다면 당연히 백성의 편을 들 것이다. 전승자는 상대적 약자를 편드는 방향으로 결말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