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8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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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上亭 |
영어의미역 | Hasangjeong Pavili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443-9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강정화 |
건립 시기/일시 | 188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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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443-9 |
성격 | 누정|정자 |
양식 | 목조 기와|홑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관리자 | 하동군청 도시건축과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정자.
[개설]
하상정(河上亭)은 하동 송림 안의 활을 쏘던 장소였다. 하동 송림은 1745년(영조 21) 당시 도호부사였던 전천상(田天祥)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심었던 소나무 숲으로, 현재 약 9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2005년 2월 18일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되었다. 노송의 나무껍질은 거북의 등과 같이 갈라져 있어 옛날 장군들이 입었던 철갑 옷을 연상하게 한다. 하동 송림은 오늘날 국내 제일가는 노송 숲으로서, 넓은 백사장과 맑은 섬진강 물이 어우러진 경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위치]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하동 송림 내에 있다.
[변천]
하상정은 1880년(고종 17) 무관 출신의 여러 벼슬아치와 선비들이 하동 송림 내에 목조 기와 약 49.59㎡[15평] 정도의 사정(射亭)을 세워 무예를 닦고 회합하던 장소이다. 창건 이후 궁술을 연마하던 전국 제일의 활터로 이름났다.
1920년 지역 유림이자 무관 출신의 후손인 김태익(金泰益)·여경규(余暻奎)·신사영(辛士永) 등이 계를 조직하여 관리 및 활성화에 노력하였으나,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거의 황폐화되었다. 광복 후 궁도 부흥에 뜻을 둔 지역민의 도움으로 중수하여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 가던 중, 2005년 하동 송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궁도장은 이전하였고, 현재는 정자만 남아 있다.
[형태]
홑처마의 팔작 기와지붕 건물로, 우물자형 마루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 목조 건물로, 하동 송림 내 나무 보호를 위해 단층 구조로 조성하였다. 하상정은 정면에서 궁도를 연마하던 궁사가 휴식하던 공간으로, 사용의 편리를 위해 마루의 중앙 기둥을 뒤쪽으로 이축하였으며, 사방의 난간은 후대에 만들어진 서양식 모양으로 되어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하상정은 하동군청 도시건축과가 관리하고 있다. 궁도장으로 사용되었던 하상정 앞 궁터에는 하동 송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 소나무를 심어 놓았다. 따라서 현재 하상정은 궁사들의 휴식 공간으로서의 본래 역할이 아닌, 하동 송림을 찾는 관람객의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다. 하동 송림은 현재 숲 기능 보전과 훼손된 노송을 체계적으로 살리고 가꾸기 위해 「자연 공원법」 제28조의 규정에 따라 자연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하상정은 개방 지역 내에 있어 관람이 가능하다.
[의의와 평가]
하동은 궁술 연마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곳으로도 유명하며, 현재까지도 이름난 궁도장이 많이 전한다. 하상정은 역대로 전국 제일의 궁도장으로 각광받았던 곳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역할도 달라져, 현재의 하상정은 그 목적과 역할을 상실한 채 누정으로서의 새로운 이름을 얻은 셈이다. 안내판이라도 세워 하동 송림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상정의 역사적 변천을 알려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