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2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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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走筆賀高先生宅成兼敍廉察命構之意 |
이칭/별칭 | 이규보,임피,장시,고항중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황태묵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168년 - 이규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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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241년 - 이규보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241년(고종 21) 8월 - 이규보 아들 이함 『동국이상국집』 간행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199년~1201년 - 이규보 전주목(全州牧)에 사록겸장서기(司錄兼掌書記)로 부임 |
배경 지역 | 군산 임피 - 군산시 옥구군 임피 |
성격 | 고율시 |
작가 | 이규보 |
[정의]
고려의 대표적인 문인 이규보(李奎報)가 군산 선비 고항중의 집 낙성을 축하한 고율시.
[개설]
이규보의 자(字)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 거사(白雲居士)로, 만년에는 시·거문고·술을 좋아하였다 하여 삼혹호 선생(三酷好先生)이라 부르기도 했다. 최씨 정권의 신임을 얻고 벼슬을 하던 32세 때 사록겸장서기(司錄兼掌書記)로 전주에 부임하였다. 당시 그가 쓴 시 60여 수 가운데, 「주필하고선생댁성 겸서염찰명구지의」는 군산 선비 고항중의 집 낙성을 축하하고, 윤위가 몰래 친구의 사정을 살펴 집을 지어 주게 한 뜻을 서술한 작품이다.
[구성]
일곱 자 스물여섯 행의 시로, 1~10행은 사업 윤위의 공덕을 칭송하는 겸사가 나타나 있으며, 11~22행은 고항중의 집 낙성을 축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3~28행은 이와 같은 미담이 후세에 널리 기록되기를 바라는 심경이 제시되어 있다.
[내용]
이 시의 창작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남행월일기」에 의하면 이규보는 전주에 부임한 후, 1200년(庚申年)에 만경·임피·옥구에 들러 며칠을 묵었다고 되어 있다. 또한 『동국이상국집』에는 옥구 일대에서 여러 날 묵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기록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차운고선생항중헌염찰윤사업위병서」의 서문에는 임피군에서 비를 만나 객관에 머물며 시를 지어서 사업 윤위의 행헌으로 보낸다고 명기되어 있다. 이 기록들을 바탕으로 하여 여기서는 「주필하고선생댁성 겸서염찰명구지의」의 창작 시기를 1200년으로 추정하였다.
이 장시는 옥구현(沃溝縣)에 사는 선비 고항중(高抗中)의 집 낙성을 축하하고, 사업 윤위가 몰래 친구의 사정을 살펴 집을 지어주게 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에 시편을 제시하겠다. 번역은 『군산 시사』를 따랐다.
주필하고선생댁성(走筆賀高先生宅成) [급히 써서 고선생의 집 낙성을 축하하고]
겸서염찰명구지의(兼敍廉察命構之意) [몰래 사정을 살펴 집을 지어주게 한 뜻을 서술하다]
금세인정추수박(今世人情秋水薄) [지금 세상의 인심 엷기가 가을 물 같아]
조위형제모행인(朝爲兄弟暮行人) [아침엔 형님 아우하다가 저녁엔 남이 되네]
궁상문경달즉엽(窮相刎頸達卽葉) [궁할땐 절친하다가 현달하면 버리니]
시말수긍사정친(始末誰肯思情親) [변함없이 누가 옛정을 생각하나]
윤공독시고군자(尹公獨是古君子) [윤공께선 홀로 옛날 군자 같은 분이라]
흥군위우가뇌진(興君爲友如雷陳) [그대와 함께 벗삼아 뇌의와 진중 같구나]
공시일방성사귀(公是一方星使貴) [윤공은 한 지방 귀한 사신인데]
군위궁곡소거윤(君爲窮谷巢居倫) [그대는 궁벽한 고을의 선비로다]
인간영췌수이세(人間榮悴雖異勢) [인간의 영췌는 형세따라 다르나]
심사금석무치린(心似金石無淄磷) [마음은 금석 같아 변함이 없네]
염군궁여재철부(念君窮如在轍鮒) [그대의 빈궁한 철부와 같음을 생각하고]
연군궁약실휴균(憐君窮若失林麕) [그대의 군색한 숲 잃은 사슴같다 하여]
명개신우돌차취(命開新宇咄嗟就) [속히 새 집을 이루게 하였으니]
비헌익익와인린(飛軒翼翼瓦鱗鱗) [시원한 마루에 기왓골이 나란하네]
시월천한설영척(十月天寒雪盈尺) [시월의 추운 하늘 눈이 한 자쯤 쌓였으니]
남창부일난어춘(南窓負日暖於春) [남창은 햇살 받아 봄처럼 따스하네]
혼가탄소유생의(渾家歎笑有生意) [온 집안 기쁜 웃음 생기가 돌아]
축공미수도영춘(祝公眉壽到靈椿) [윤공의 수명 영춘 같기를 빈다네]
부로연집하성하(父老鷰集賀成廈) [제비처럼 모인 부로들은 낙성을 축하하고]
추양과고동사린(搥羊撾鼓動四隣) [염소 잡고 북을 치며 온 마을 시끌하네]
아본불욕개인선(我本不欲盖人善) [내 본래 남의 착함을 덮고자 않아]
일개차사루첨건(一開此事淚沾巾) [이 일을 듣고 눈물이 수건을 적시었네]
회대옹두부녹의(會待甕頭浮綠蟻) [마침내 동이에 있는 좋은 술 가지고]
복건왕작승당빈(幅巾往作升堂賓) [복건 쓰고 찾아가서 손님 노릇 하려네]
일편장구서이사(一篇長句書異事) [한 편의 시로 특이한 사실 적으니]
이일당부수사신(異日當付修史臣) [뒷날 역사 쓰는 이에게 부탁하리라]
[의의와 평가]
이규보는 “문벌 귀족이 가졌던 규범적인 사고 방식을 따르지 않고,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며, 민중의 삶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체적인 문학을 이룩하자는 방향”을 문학 작품을 통해 내보였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주필하고선생댁성 겸서염찰명구지의」는 지방의 곳곳을 직접 지나며 그들의 생활에 애정을 기울이고 그곳의 선비들과도 교유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시편이다. 문인이자 유학자로서의 겸손함을 보이면서도 지나친 표현을 삼가하여 소박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시의 구절구절은 최자가 말한 바, “한 번 갈겨 쓰는 데 백 장을 쓰더라도 모두 옛사람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탁연히 제절로 이루어진다.”라는 평가가 적절함을 여실히 보여준다.